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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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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기업가 정신 살려 저성장 파고 넘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2.07 08:58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한국경제는 2024년 새해에도 그리 밝지 못하다. 대외적으로는 우크라니아-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중동 분쟁의 확산,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없는 불안 요소와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과 기업의 투자 둔화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요인으로 올해도 2% 초반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기 위축 이후 기저효과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기저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경기 회복력이 약화된 것은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완전고용 상태에서 물가상승을 일으키지 않는 최대성장률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 추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23년 OECD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 3.5%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낮아져 올해는 1%대 중후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하기 어려운 제도적 환경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 대다수 기업인들이 동의한다. 제도적 환경은 한마디로 '규제'다. 규제는 집행력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규제가 불합리하거나 과도해서 순응하기 어려우면 불합리한 제재가 수반되고 기업인들은 전과자가 된다. 법을 어긴 사람이라면 정치인, 기업인 가릴 것 없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에 동반되는 과도한 처벌은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을 꺾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막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2021년 한경협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6개 중앙부처의 경제관련 법령 301개 중 6568개의 기업 형벌 규정이 있다. 이 가운데는 이중 삼중 처벌도 있으니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인 과잉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하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만 대부분이 번번히 문턱을 넘지못한다. 이렇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개선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권에서 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인은 감시,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을 극진히 대접한다. 1995년 삼성전자가 영국 윈야드에 7억달러를 투자할 당시 영국은 투자금의 2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공장 준공식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왕실 유력인사, 정치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영국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조그마한 미지의 국가에 불과했겠지만,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제공한 것이다.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에 관련된 인사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검찰 기소로 시작된 사법적 다툼이 3년5개월이나 지난 2024년에야 겨우 1심이 끝난 것이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그간의 조사, 심리절차 등을 위한 시간과 재정적 비용, 돈으로 계산이 불가능한 기업과 기업인의 평판 훼손 등 해당 그룹과 경영자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검찰 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시선,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경영자들의 불안감 등 사회적 자본의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 그것이다.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린 셈이다.


기업인들은 최고의 예우를 기대하며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가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기업인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나아가 기업인의 공을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고, 후세들에게 부모세대만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렸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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