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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 한해가 시작되었다. 필자의 유년시기였던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연말 연시에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흘러나오고, TV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희망찬 새해에 대한 기대의 메시지가 가득찼던 것 같다. 세계 속에서 국가적인 위상이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 측면에서 보자면 1980년대의 경제 지표들은 현재 대비 훨씬 열악했지만 고도 성장기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너무나 당연한 명제로 여기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IMF 시기 이후 우리는 불확실성이란 세기말 적 현상에 맞닥뜨렸다. 전 세계는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을 맞이하면서 세기 말 적 아노미를 겪은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뉴욕 9·11테러 사태,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그 여진이 지속되면서 요즘 우리 주변에는 희망보다는 암울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지난한 글로벌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원자잿값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 지속적인 불안을 겪어왔다. 인간이란 존재적 불안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1960년대 인구억제정책 실시로 가파르게 감소한 출산율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더욱 감소했고 2016년 이후 또다시 하락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됐다. 결국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성장보다는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0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2024년 0.70명대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같은 인구감소를 두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유럽의 14세기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절벽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필자의 6학년 딸의 현실 인식도 가관이다. "아빠, 결혼도 안하고 애기도 안 낳는 게 좋을 것 같아.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키우는 건 정말 힘들 것 같아. 학원도 보내줘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잖아." 현 초등학생을 키우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인식이 이러할 진데 우리나라의 10년, 20년 후 인구 상황이 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젊은이들, 특히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출산과 관련 사실상 개점휴업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실질 소득은 오르지않는 데 그 외 것들이 모든 게 다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상 출산율 하락은 출산율 하락 이외에도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등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주 원인으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국토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주택매매가격 1% 상승은 다음해 출산율을 0.00203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분석되었고 전세가격 1% 상승은 다음 해 출산율을 0.00247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사교육비 영향은 첫째 자녀 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둘째와 셋째 자녀에 대한 영향은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는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에서는 출산가구를 대상으로 ‘신생아 특별공급’ 제도를 신설하고 생애 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 중 20%를 출산 가구에 우선 공급키로 했는데, 임신·출산 가구에게 혜택을 부여키로 한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언발에 오줌 누는 수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고 싶은 세상,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 아이를 키우고 싶고, 그 아이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정부와 정치가 만드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