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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에너지 로고. 출처=필에너지 홈페이지 |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필에너지가 상장 뒤 거래 이틀 만에 급락세를 기록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격의 4배인 ‘따따상’에 근접하면서 대박을 기대했지만 대규모 전환사채(CB) 전환권 행사 공시가 나오면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례적인 상장 첫날 CB전환 공시를 두고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기업공개(IPO) 건전성을 보완하겠다며 도입한 상장 당일 가격변동폭 확대 정책이 오히려 투자 리스크를 더 키운 모양새다.
◇ 대규모 CB 전환 예고에 필에너지 폭락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필에너지의 종가는 8만9000원으로 지난 14일 종가 대비 22.34 % 떨어진 가격이다. 14일은 필에너지가 상장한 날로 공모가격 대비 237% 급등한 11만4600원으로 마감하며 시장의 기대감이 컸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필에너지가는 공시를 통해 오는 26일 CB 전환권 행사에 따라 신주 120만주가 시장에 풀린다고 밝히면서 투심이 급변했다. 이는 필에너지의 공모주식수(281만주) 대비 42% 에 달하는 규모다.
해당 CB의 행사가격은 1만3330원으로 필에너지 상장 첫날 종가를 기준으로 하한가를 6차례 기록해야 도달하는 수준이다.
물량도 적지 않고 행사가격도 낮다. 신주 상장일도 멀지 않다 보니 주가 희석이 불가피하다.
필에너지는 대규모 오버행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IPO 과정에서부터 사전에 알렸다. 회사 측은 투자설명서를 통해 후 주식 관련 권리가 행사될 경우 상장주식수가 증가할 수 있으며 주식 수의 증가로 인해 주식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필에너지 이전에도 상장 직후 CB나 BW의 전환이 가능했던 종목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쉽게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공모 직후부터 기존 투자자들의 엑시트를 불러올 정도로 주가가 급등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 급등은 CB 투자자 입장에서 놓치기 아까운 상황이었다. 주가가 행사가격 대비 8배나 높아지는 것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전환권 행사 공시 이후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6연속 하한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간이다.
◇ ‘신속한 균형가격’이 개미지옥 연출… 당국 책임론
이번 상황을 두고 금융당국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가 지난 4월 도입한 ‘IPO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에 따라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을 크게 늘린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에는 기존 신규상장 종목은 공모가격의 90~200% 내에서 호가를 접수해 결정된 시가를 신규상장일 기준가격으로 사용했다. 이날 상하한가는 ±30%에서 정했다.
하지만 지난 6월 26일부터는 공모가격을 신규상장일 기준가격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가격제한폭을 공모가격의 60~400%로 확대했다.
제도를 바꾼 이유는 신규상장일 당일 신속한 균형가격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제도의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새내기 종목에 기존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가 있을 경우 이번 사례처럼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한다면 곧바로 ‘엑시트’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제성과 수급, 흥행여부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는 상장 첫날부터 서둘러 ‘균형가격’을 발견하겠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한 법인이 상장하려면 외부감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정한 기업가치를 산정하게 된다. 그리고 기관투자자를 통한 수요예측까지 진행해 공모가를 정한다.
이렇게 공모가를 정해놓고 상장 첫날 주가가 400%까지 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필에너지를 상장 첫날 고점에 매수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하한가를 6차례 맞은 충격을 받았을 공시"라며 "그동안 ‘공모주 상장일 가격제한폭 확대’ 정책에 우려가 컸는데 제도 도입 보름 만에 시장에 큰 혼란이 생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k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