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너지경제신문 양성모 기자] 최근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유증)를 통해 자금조달에 나서는 상장회사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투자자들도 냉가슴을 앓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금융비용 없이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조달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거나 신규투자에 나설 수 있어 긍정적이지만 기존 주주들 입장에서는 주가하락을 통한 피해와 더불어 기업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페이퍼코리아, 빚 상환용 2200억 유증폭탄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유가증권 시장 상장사인 페이퍼코리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26%(-11원) 내린 863원에 거래를 마쳤다. 앞선 지난 11일 주가가 23.40%(267원) 하락한 874원으로 내려앉은 데 이어 2거래일 연속 약세다. 이는 지난 10일 약 22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신주 2억4136만주를 주당 910원에 발행하는 내용의 주주배정 유증을 결정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달 자금 규모는 주가급락 전날인 10일 기준 시가총액(542억7300만원)의 네 배에 가깝다. 특히 조달자금 대부분은 차입금 상환을 위해 쓰여질 예정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다. 페이퍼코리아는 연합자산관리의 자회사인 유앤아이대부로부터 빌린 1176억원 중 1146억원을 1순위로 상환하고 2순위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300억원 등을 갚는데 쓸 예정이다. 포털 주주게시판에 한 누리꾼은 "(페이퍼코리아)주주들의 돈이 페이퍼가 됐다"고 쓰며 비꼬기도 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23일 1조20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증을 결정한 바 있다. 공시 전날인 22일 18만2800원이던 주가는 공시 이후 약세를 보이며 6월 29일 15만8000원까지 밀렸고, 이후 소폭 회복세를 나타냈으나 여전히 주가는 16만원 중반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CJ CGV도 57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증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피해 준 바 있다.
유상증가 건수는 줄어든 대신 조달규모는 늘어나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를 보면 연초 이후 11일까지 유가증권 시장에서의 유증 건수는 35건, 조달금액은 7576억원을 기록했다. 또 코스닥 시장에서는 186건, 459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코스피 52건 9490억원, 코스닥 213건, 3416억원 대비 유가증권 시장은 건수와 규모 모두 줄었고, 코스닥은 건수는 줄어든 대신 규모는 증가했다. 다만 유가증권시장 규모는 주식발행일 기준으로 산정된 만큼, CJ CGV를 필두로 SK이노베이션과 페이퍼코리아의 유증이 완료되면 올해 전체 규모는 작년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조정 후폭풍… 주주 오버행 피해
이처럼 기업들이 주주배정 유증에 나서는 이유는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하거나 회사채 발행에 나설 경우 금융비용이 발생하지만 주주배정 유증의 경우 모든 자금을 주주가 떠안는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다. 기존 주주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유증을 통해 신주가 발행될 경우 주가가 희석될 수 있고, 증자 시 현 주가 대비 할인된 공모가가 형성되는 만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우려가 있어 주주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채무상환이 아닌 시설투자를 위해 유증에 나선 바 있으나 증권업계는 단기적인 주가 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유증을 통해 미래 성장 사업 투자는 긍정적이나, 그 효과가 반영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유증으로 인한 주가 하락과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유증 공시 이벤트는 보통 주가 영향이 크고, 배정 방식에 따라서 그 주가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주주배정 유증과 일반공모 유증을 공시할 때 주가 하락이 나타난 반면, 3자 배정 유증은 주가 상승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주주들이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 "주주 배정 유증은 청약 이전에 신주인수권증서를 거래할 수 있다"며 "따라서 증자 참여 대신 신주인수권증서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희석 효과를 방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