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지난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국회 법률안에 대한 두번째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엄연히 헌법 제53조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국회의 결정을 뒤집는다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에 섣부르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법안이 통과됐을 때 발생할 국가적 손실과 논란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거부권 제도의 원조는 미국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미국 연방헌법에 규정돼 있으며, 연방을 이루는 각 주의 주지사들에게도 거부권이 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미국 민주주의의 요체로 견제와 균형 및 권력 분립(checks and balances and separation of powers)을 강조했다. 조지 워싱턴 이후 올해 5월 현재까지 46명의 대통령이 총 2587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중 거부권 성공률, 즉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률안 통과가 저지된 비율은 80%가 넘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고유 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은 입법부를 견제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특히 이번 국회 처럼 거대야당의 입법폭주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의가 있을 때’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위헌적 입법을 하는 헌법적 사유는 물론이고 법률안이 대통령 개인에게 불리한 것을 근거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경우 법안이 농가 소득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호법 제정안은 의료 직역 간 갈등 유발과 이로 인한 국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각각 법률안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들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 재의결을 거치게 되고, 재의결 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확정된다. 거부권이 행사된 두 법률안은 모두 재의결에서 부결됐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의 불법쟁의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이다. 특히 사용자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불법쟁의 참여 근로자 개인별 책임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히 증명하도록 했는 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인 전국노동관계법(NLRA)은 손해를 막기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한 노동쟁의만 보호한다. 레미콘 제조회사인 글레이셔 노스웨스트(Glacier Northwest) 노조는 2017년 파업 당시 레미콘을 가득 실은 트럭을 점거했다. 차에서 레미콘이 굳어 큰 손해를 입은 사측은 노조가 ‘의도적’으로 회사 재산에 손해를 입혔다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현재 연방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회사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측한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입장에서는 불법파업을 해도 손해를 볼 일이 없으니 모든 문제를 파업으로써 해결하려 드는 ‘파업만능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다. 이로부터 발생할 산업 현장의 혼란과 국가적 경제 손실은 고스란히 다른 피고용인, 사용자, 더 나아가 국가의 몫으로 돌아온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로 거부권을 행사했는 데도 야당은 대통령이 국론 분열을 부추긴다며 트집을 잡는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수가 역대급으로 많도록 만들어 이를 근거로 ‘국회와 등진 대통령’, ‘불통ㆍ독재ㆍ오만한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속셈이 아닌가. 대통령 거부권이 있어 다행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야당의 입법폭주를 막을 수단이 하나라도 있으니 말이다. 잘 되면 본인 탓, 안 되면 대통령 탓을 하는 야당의 포퓰리즘 정책 남발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