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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상 ‘묻지마 집회’에 짓밟히는 ‘환경권’···"집시법 개정 시급"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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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 시위자들이 부착한 불법 게시물들이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집회’가 계속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환경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앞세워 동등한 가치의 헌법상 권리인 ‘환경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15일 관련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국내 주요기업 사옥 주변 등 곳곳에서는 집회·시위를 악용하는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목적 관철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피해를 끼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시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적 표현 및 허위 사실이 적시된 현수막 등을 별다른 제재 없이 내걸고 있다.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고음의 운동가요를 반복 재생하는 방식 등을 동원해 특정인과 기업, 인근 지역 시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우리 헌법은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해 필요할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가려진 ‘환경권’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현행 헌법 개정(1987년) 이후 시위 당사자의 의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의 절대적 금지(신고제), 국가의 절차적 통제 최소화, 사전 신고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와 시위의 장소(국회, 법원 인근 금지 등), 시간(일몰 후~일출 전 금지) 등 제한 움직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역시 ‘시위 소음으로 인한 업무 방해’와 ‘사전 신고 절차를 위반한 집회 개최’ 등과 관련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취지 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오고 있다.

문제는 민주화의 결실로 탄생한 현행 헌법의 영향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적가치가 과도하게 해석되면서 헌법이 동등하게 보장하고 있는 가치인 ‘환경권’ 등이 불합리하게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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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상성그룹 사옥 앞. 시위자들이 부착한 불법 게시물들이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삼성그룹 서초 사옥이 위치한 강남역 주변은 주말까지 집회 시위가 지속돼 기업은 물론 주변 상인들과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까지 극심한 소음피해를 입고 있다. 불특정 다수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환경권’을 침해 받고 있는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자동차 판매업을 했던 A씨는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근거 없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데 소음과 불법 천막으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이 상당하다고 전해진다.

A씨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극심한 소음을 발생시키며 기업과 인근 시민의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다. 인도 위에 불법 천막을 설치해 보행하는 시민들의 이동 환경도 저해하고 있다. 지자체의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또 도로 사거리 주변에 세운 10여개의 깃발형 현수막은 천막과 함께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 보행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 위험성마저 높이고 있다.

A씨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민·형사상 판결 등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지자체와 경찰 등도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환경권’ 이념은 일부 선진국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돼 오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UN 인간환경회의에서 "인간환경의 보호와 개선은 인간의 복지와 경제발전에 미치는 주요 문제이므로 이는 전세계 인간의 절박한 염원이고 모든 정부의 책임"이라는 ‘UN 인간환경선언’ 결의문이 채택된 것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자국 법체계에 흡수했다.

‘환경권’에서 언급되는 환경은 토지·물·공기 등 자연적 환경뿐만 아니라 도로·공원과 같은 인공적 생활환경에서 넓게는 문화유산·의료·교육과 같은 것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각에서는 헌법상 다른 권리들에 비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과도하게 보호받는 과정에서 나타난 기본권 간 충돌을 국회가 나서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권 간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법률 개정 권한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전제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다른 기본권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 30여건이 다수 의원들을 통해 발의돼 있다. 자신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정도를 넘어 타인에게 심각한 괴롭힘이나 피해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집회·시위를 악용하는 것을 법률로써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 결과다.

지난해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율해 건물로부터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한 것 외에는 별다른 논의의 진전이 없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오랜 격언 중 ‘당신이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타인의 코앞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며 "지금은 집시법 개정을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에 가려진 다른 헌법상 가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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