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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판결, 인과관계 성립 여부 불분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08 11:00

경총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분석 전문가 회의’ 개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및 판결 개요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및 판결 개요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최근 나온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1·2호 판결 관련 인과관계 성립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8일 중처법 위반 사건(1·2호) 판결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시사점을 찾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개최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함께했다.

경총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서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1·2호 사건 모두 검찰의 공소사실(범죄 혐의)을 피고인(대표이사)이 인정함에 따라, 재판과정에서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경총의 설명이다.

형사처벌의 핵심요건인 범죄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합리적 근거도 없었다. 1·2호 사건 모두 대표이사의 중처법 의무위반과 사망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근거나 논리를 찾을 수 없었다.

중처법으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중처법 의무 위반→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구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사망의 결과 발생 등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법원의 공소사실을 보면 원청 대표이사의 중처법 의무위반이 하청업체의 산안법 위반(작업계획서 미수립 등)과 사망사고 발생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1호 사건의 공소사실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 위반’과 이로 인해 ‘하청이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함’ △‘작업중지 등 매뉴얼 마련 위반’과 ‘하청이 안전대를 지급하지 못함’ 간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1·2호 사건의 공소사실인 △‘안전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위반’과 ‘하청이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함’ 간 인과관계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하청업체가 산안법상 해야 할 구체적 안전조치를 원청 경영책임자의 중처법상 의무로 잘못 이해해 기소했고, 법리 다툼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게 경총 측 분석이다.

하청근로자에 대한 안전대 지급 등의 의무이행 주체는 하청업체 사업주다.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준수 할 의무가 아니다. 원청 대표이사는 중처법에 따라 사업장 전체에 적용하는 업무매뉴얼(절차서)를 작성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1·2호 판결사례로 검찰의 공소사실이 그대로 인정(자백)될 경우 법률 규정에 따라 징역형 위주의 무거운 형벌이 경영책임자에게 내려질 것으로 경총은 우려했다.

1호 판결 외에 향후 재판이 예정된 12건(삼표산업 제외)은 모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및 중소 건설업체다. 향후 법 준수 대응능력이 미비한 50인 소규모 기업은 사망사고 발생 시 대표이사가 형사책임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진우 교수는 "중처법 1·2호 판결은 피고인이 자백을 하다 보니 법적 다툼이 없어 법원에서 사실상 검토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이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다른 사건에 시사하는 점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에 너무 많은 허점이 보이며, 유죄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이것에 꿰맞추기 위한 논리 전개를 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며 "법원에서 유무죄가 다퉈지지 않으면 고용부의 자의적 수사와 검찰의 기소가 남발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김상민 변호사는 "중처법 제정 이후 법 위반사항과 사망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는지 논란이 많았는데 1·2호 판결은 자백으로 인해 법원이 정밀한 논증 없이 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했다"며 "추후 인과관계를 적극 다투는 사건에서의 법원 판결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중처법의 과도한 처벌규정에도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 입증에 대한 철저한 법리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며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중한 처벌이 부과되지 않도록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하는 등 정부가 하루빨리 중처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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