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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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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에너지정책에서 정치거품 빼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29 08:29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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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입춘(立春)과 경칩(驚蟄)이 지나 이제 봄이다. 곧 여름이 올 것이다. 당연한 시절흐름을 강조하는 것은 에너지걱정에 편치 않았던 겨울이 지났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스가격 급등-전기요금 추가상승- 가정 난방비용 등 에너지비용 동반 급등- 물가상승과 인플레 가중- 건전성장과 균형복지체계 붕괴라는 악순환이 에너지시장 불안정을 중심축으로 지속되었다. 그런데 세상사 걱정은 항상 끝이 있다. 유럽의 예상외 따뜻한 겨울날씨에다 각국 정부의 긴축정책 효과로 극심한 에너지 곤궁은 모면하였다. 특히 소비자들의 합리적 소비행태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에 선진 각국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전략을 통해 세계질서 단극(單極)주도국 위치 강화를 꾀하고 있다. 에너지자립과 LNG수출시장 주도능력을 기반으로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확실한 세계 정치·경제 주도권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유럽(EU)도 러시아 악몽에서 벗어나 에너지·환경문제의 합리적 연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달 채택된 유엔 ‘기후변화에관한정부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유럽의 적극적 기여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실용화능력과 막대한 희귀광물자원의 전략적 활용으로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다 러시아와 적극적 연계를 통해 미국과 양극(兩極)체재 구축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은 시장경제원칙과 기술혁신 중시 체재 아래에서 느리지만 큰 혼란 없는 에너지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유럽 에너지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러시아도 중국·중동과의 에너지연대로 경제파탄을 극복하고 광범위한 사회주의 연대체계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걱정이다. 아직도 이념과잉 에너지정책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실패-정책실패의 폐해를 모두 국민 부담으로 전가하고 있다. 이에 관련정책의 보완은 다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보완은 안 된다. 대부분 낡은 ‘경로 의존적(path dependant)’ 전략으로 큰 쓸모가 없다. 문제 진단과 분석, 그리고 대안 제시라는 과학적 전략 도출 원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너지라는 재화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에너지는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진 경우가 적다. 다른 재화·서비스의 가치를 키우는 중간투입재일 뿐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에너지가격 하향 조정 이 외에 뚜렷한 위기해결책이 없다. 더 큰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에 활용된다는 점이다. 결과검증이 쉽지 않은 에너지문제를 정치이념의 합리화도구로 활용한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비(非)과학적’ 목표를 일단 제시하고, 장기 여건변동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이에 에너지시장은 시장왜곡의 상징이다. 정부-민간 간의 이기적 담합이 우려된다는 걱정이 많다.

이에 정부의 도덕적 권위를 강화하는 정책체계도입이 시급하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 필수재인 에너지정책 체계구성에 공공선(共同善·Public Good) 개념도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공공선이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 존중을 통해 다수의 삶의 질을 높이는 ‘윤리적인 시장경제’ 개념이다. 따라서 재화와 서비스의 단기 투입수준을 따지기보다 집단지성을 통한 중·장기적 공동체 구성 방법론과 사회적 후생 ‘거버넌스’ 조성에 치중한다. 인간은 공존적(共存的) 존재이기 때문에 공익보다 사익만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공동체 연대의식 붕괴와 함께 결국은 현존 문명체계 훼손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는 이미 바로 활용 가능한 공공선의 평가논리와 실행수단이 많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논리가 대표적이다. 기후변화 적응과 에너지 절약도 그러하다. 현행 인류문명은 지구온난화, 질병통제, 정보격차, 금융위주 구주확대에 따른 형평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모든 문제 해결에는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할 투자와 규제의 복잡다기한 조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민간을 망라한 기술·조직·사회 혁신도 필요하다. 특히 느리고, 비효율적인 기존 정부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에 따른 부정적 효과 감축 대책이 긴요하다. 투입-산출 효율검증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 정부가 공공선을 가치판단 기준으로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에너지정책 추진 체계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를 통해 세계적 에너지 공급제약에 대비하여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차원의 기여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당장 ‘대가 없는’ 공익 차원 에너지 절약을 떳떳이 당부할 수 있다. 결국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정부만이 규제와 시장개입으로도 안 되는 ‘단기’ 에너지 문제,특히 요금 논란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손 쉬운 정치의 힘을 버리고 도덕적 권위를 찾는 정부를 보고 싶다. 정치화된 ‘자칭 전문가’들을 앞세운 정치개입의 합리화는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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