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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
올 4월 영국에서 LNG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보다 하락했던 이유는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럽이 구매한 LNG를 전송해 줄 터미널이 부족해 LNG 저장시설과 유럽의 파이프라인 인터커넥터가 있는 영국이 수송로 역할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파이프라인이 최대용량으로 가동되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LNG가 영국으로 들어왔고 당시 온화한 날씨로 유럽의 가스 수요가 줄어들면서 영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급락해 남아도는 천연가스를 전력생산으로 돌리면서 영국은 잠시나마 유럽의 대형 전력 수출국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러나 영국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영국 에너지비용 결정방식이 몇 달 또는 몇 년 전 선물로 결정되기 때문인데 에너지 위기 이전보다 여전히 3~4배가 더 높았으며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온화한 기후 역시 에너지 위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겨울 따뜻한 날씨로 눈이 내리지 않았고 적설량 부족과 올여름 가뭄이 만나 라인강의 수위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냉각수가 필요한 원전은 물론 라인강으로 운반해야 할 석탄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전력공급은 줄어들었고 저렴한 내륙운송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유럽경제 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LNG 재고가 충분하다지만 유럽의 여러 기업은 급등한 에너지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공장을 멈추고 있다. 지난 9월 세계 최대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가스와 전기요금이 10배가 올라 공장 2곳을 폐쇄하고 1곳을 가동 중단했다. 최근 BASF는 치솟는 에너지비용으로 유럽지역 생산을 영구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의 아연제련소들은 생산량 감축과 가동중단을 단행했고 천연가스로 만드는 비료는 생산능력의 70%가 멈춰섰다.
인플레이션으로 수요파괴가 예상 된다지만 에너지비용 급등으로 현장의 공급능력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 핵심산업의 가동중단은 고스란히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유럽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올 겨울을 무사히 보낸다 하더라도 유럽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보다 몇 배는 더 비싼 LNG로의 경제전환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 본격적인 에너지 위기가 벌어지기도 전임에도 유럽 각국의 시민들은 급등한 에너지요금을 내는 대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며 청구서를 불태우고 있다. 값비싼 천연가스 대신 장작은 물론 쓰레기와 말똥까지 태우고 있다. 헝가리는 EU 단일대오에서 이탈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공급받으면서도 벌목규제를 완화했고 장작 수출을 금지했다. 이탈리아와 스웨덴은 친러 극우세력이 집권하며 에너지 위기가 비료와 식량난, 경제위기를 거쳐 민주주의의 위기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만 커졌을 뿐 유럽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위기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저렴한 기존 에너지원이 충분히 공급되어 모든 것의 가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시작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서 정책당국은 지금까지 공급을 늘리지도 가격을 내리지도 못했다. 유난히 수요 절감에 집착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럽에 한파가 몰아치는 순간 그들이 설정한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천연가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중국의 봉쇄가 끝나는 순간 LNG 수급은 다시 어려워질 것이다. 독일과 영국 국민은 한파에 대비해 전기담요를 구매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들은 올겨울 전력 수요 절감을 바라는 정책당국의 희망과 반대되는 양상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8월 피크에 비해 65%가 하락했지만 MWh당 115유로의 가격은 석유로 환산하면 180달러에 달하며 10년 평균 천연가스 가격의 5배가 넘는다. 디젤 가격은 재고 부족과 함께 다시 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며 일본은 톤당 70달러면 비싸다는 석탄을 최근 395달러에 도입했다. 현재 화석연료는 선진국들도 감당하기 힘든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는 관광홍보와 가즈프롬 소개 영상에서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이란 메시지와 함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얼어붙는 영상으로 유럽을 조롱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당국의 판단은 러시아의 조롱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