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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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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탄녹위, 에너지정책에 대한 신뢰와 공감 넓혀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1.03 10:09

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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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지구촌은 홍수, 가뭄,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 입은 손실이 약 85조원 규모로 추정되며, 2010년대의 기후 관련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970년대 보다 약 8배 증가하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137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거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RE100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 등 국제사회에서는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을 위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은 화석에너지 의존을 벗어나고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400조원을 투자하여 에너지 소비의 절감, 공급망의 다변화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2월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2021년 5월에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구심점 역할로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올 3월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얼마 전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출범하였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평가해보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상응하여 중간목표인 2030년의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함으로써, 기후악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국내적으로는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이행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 선언 이후 짧은 기간 동안의 압축적인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였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마련하는데 미흡함이 있었다.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이번 전략은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계획 수립에 중점을 두고, 충실한 소통과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민간과 지방 주도로 탄소중립을 실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과 분과위원회 수를 절반으로 줄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발표된 지 1년 그리고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흘러서야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책임 있는 실천, 혁신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표된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위한 4대 전략과 12대 과제는 우리가 직면한 현안들을 짧게는 2030년까지 길게는 2050년까지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지만, 몇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

우선 올 4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에너지정책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으로 발표한 것 중 하나인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이다. 주요 내용은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를 확립하며,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원칙을 확립하고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여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 대다수는 오래전부터 지금의 에너지가격체계와 에너지산업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가 가장 높은 정책수단은 재생에너지도 원자력도 아닌 ‘효율 향상’으로 나타났다.

효율 향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기능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가격 기능인데 지금 우리의 에너지 가격시스템은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현안은 에너지 관련 시설에 대한 수용성을 어떻게 높이고,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외에 현실적으로는 원자력발전의 고준위폐기물처리장 부지, 태양광 혹은 풍력발전 설치 부지, 소각장·매립지 부지, 송전탑 건설 부지 등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은 고사하고 2030 NDC 달성도 어렵게 된다.

소통과 합의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정부에서 강조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는데는 한계에 부딪쳐 왔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미흡한 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는 어느 한 정부나 정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와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한 말을 지키는 것이다. 정부는 국정운영원칙 중 하나로 국익과 실용을 강조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수정·보완하고, 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 이행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출범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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