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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삼성전자가 RE100 참여를 발표한 후 RE100은 우리 에너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을 고리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진영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유지, 나아가 생존 자체를 위해서라도 RE100 확대가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물론 해당 진영 내 강성 환경운동 세력이 견지해온 반기업·반산업적 태도에서 벗어 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부존자원·내수시장 규모 등에서 열위인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에 비추어, RE100이 국내 기업·산업에 불리함을 고려해 본다면, 재생에너지 이익공동체의 이익 추구를 위한 우회적인 레토릭처럼 들린다.
오히려 국내 기업·산업의 입장은 한국이 RE100 관련 글로벌 호구가 아니라고 일갈한 한 일간지의 최근 칼럼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해당 칼럼은 애초 자발적 민간 캠페인이었지만, 국내 기업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비자발적 불공정한 수단으로 변질하여, RE100이 탄소 국경조정세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과 함께 미국·유럽 등 서구권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질타하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발간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Apocalypse Never,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대표적인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왜 스웨덴, 즉 과거 서구 제국주의 열강 국가 출신일까. 콩고·브라질·인도네시아 등에서 이들에게 식민·수탈을 당했고, 현재 저개발·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국가 출신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들 국가의 미래세대 목소리가 거세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화두는 두 가지 개념, 소위 ‘환경 쿠즈네츠 곡선’과 ‘사다리 걷어차기’를 소환한다. 우선 환경 쿠즈네츠 곡선은 국가의 소득수준과 환경의 질과의 역(逆) U자 관계, 쉽게 말해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환경질이 악화하지만, 임계수준을 넘어선 경제성장 단계에서는 환경 개선 노력으로 오히려 환경질이 양호해진다는 가설이다. 직관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적으로나 설득력 있는 교과서적 이론으로, 충분한 국민소득 수준에 도달한 툰베리의 고향 스웨덴 등 서구권 국가들이 환경·기후 위기를 인지, 적극적 대응에 나서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반면 저개발·개도국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인간적인 삶을 위해 처참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발전을 하려면, 도로·항만 같은 사회간접 자본이나 기계화된 영농, 수력·석탄 화력 같은 값싸고 고품질의 전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서구권 국가들, 특히 그린피스 등 서구권 국제환경 운동 단체들은 이를 외면한 채, 환경파괴·기후 위기 등을 이유로 이를 방해·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구권 환경운동이 선진국들이 마치 사다리를 걷어차 저개발·개도국이 더는 추격 못 하게 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더욱이 기후변화 대응 관련 저개발·개도국에 간헐성·에너지 밀도 면에서 저품질인 태양광·풍력 사용을 강요하는 것 역시 저개발·개도국보다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같은 소득일 때 콩고보다 과거 미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훨씬 많이 배출했다는 점을 들어 저자는 이들의 이기심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기후변화 대응 담론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서구권 국가들의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결과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보면 그렇다.
물론 당면한 기후 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에는 이처럼 각자가 처한 정치·경제적 이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서구권 국가들이 만든 자료나 해당 국가들에 유학한 인사들에 의존하며,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가 반영된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내면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더욱이 RE100을 넘어 탄소 중립 정책 수립에서도 이제는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함께 심도 있게 고민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앞으로 현 정부에서 새롭게 수립하게 될 탄소 중립 정책은 이런 고민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