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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전 적자부담, 발전사 떠넘기기?…정산조정계수 14년만의 '0' 논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0.24 18:36

발전 공기업 대상 4분기 적용 통보 이어 내년도 민간 발전사로 확대 추진



발전사 "전기요금 인상 정공법 대신 만만한 발전사 부담 떠넘기기" 불만



한전 "연료비 폭등 상황에서 고통분담 차원 불가피하고 당연한 조치"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자회사 쥐어짜기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의 최근 경영악화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발단은 한전이 자회사인 발전 공기업으로부터 사들이는 전력 구입 단가에 일조의 할증률을 적용하지 않기로 통보한데 이어 이를 민간 발전사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발전사들은 당장 "한전 적자 확대에 따른 부담의 발전사 떠넘기"라며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한전은 "연료비 급등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24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4분기 민간석탄발전사에 적용하는 전력 구매가격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결정했다. 한전은 발전자회사 적용 전력 구매가격의 정산조정계수도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전력 구매가격 정상조정계수를 ‘0’으로 한다는 것은 한전이 전력 구매 단가에 할증률을 적용하지 않고 전력 도매시장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 그대로 발전사에 전력 구입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정산조정계수 ‘0’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대해 대체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따른 발전 연료비의 고공행진 상황 속에서 한전의 실적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종의 분식 회계라며 상대적으로 발전원가가 저렴한 원전과 석탄발전 가동 확대 등 에너지정책 기조를 바꿔 실질적으로 실적을 개선시키거나 그게 어렵다면 전기료 현실화 등 정면돌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영탁 한밭대 교수는 "소매요금을 묶어놓으니 생기는 문제로 전력시장 구조를 개선해야지 사후적으로 이익을 배분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은 독점적 전기판매 사업자로서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어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소매요금을 시장상황에 맞게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탄소중립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전환 정책의 부담도 고스란히 한전이 다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바뀐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정부가 요금규제를 풀고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력공급사업자인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도매로 사들여 소비자에 판매한다. 한전의 전력 구입 단가는 SMP를 시장 거래가격 기준으로 하되 이에 대한 할증률 성격의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산정된다. SMP는 전력 생산 단가에서 발전에 참여하는 발전기 중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단가로 결정된다.

현행 제도 상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일 때 SMP에 0.0001~1 사이의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수익을 ‘조정’할 수 있다. 한전과 발전사의 수익을 조정하는 장치인 이 정산조정계수는 한전의 재무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장치로 활용돼왔다. 가령 발전사가 1만원을 벌었을 때 정산조정계수가 1이면 1만원을, 0.0001이면 1원만 가져가게 된다. 정산조정계수가 커지면 발전사가, 정산조정계수가 낮아지면 한전의 이익이 커지게 된다.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에 따른 저유가 기조로 SMP가 킬로와트시(KWh)당 40원대로 크게 떨어져 발전자회사의 손실 부담이 커졌고 이를 보전하기 위한 한전의 정산조정계수가 1에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MP가 최근 KWh당 200원 중반을 오르내리면서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자 이번에는 한전이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조정한 것이다. ‘0’이면 사실상 발전사에 정산을 해주지 않는 셈이다.

한전의 4분기 발전 자회사 정산조정계수 ‘0’ 통보에 발전 공기업들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발전 공기업 내부 직원들의 표정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을 대표 재무구조 개선 대상으로 지목한 상황에서 경영실적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또는 자구노력의 압박이 커지고 이는 직원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모 기업의 만만한 자회사 쥐어짜기"고 꼬집었다. 이들은 "한전이 연료비 상승으로 경영이 어렵다면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산조정계수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전측은 이같은 지적에 정면 반박했다.

한전 관계자는 "정산조정계수 조정은 국제유가 등 연료비 급등 때문이지, 한전의 적자 폭을 발전사에 전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산조정계수 조정은 연료비 급변동 등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정상적으로 활용하는 정당하고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연료비 하락 등으로 발전사의 손실이 날 때 발전사들이 높은 정산조정계수를 적용받아 혜택을 받고 나서 이례적인 연료비 상승 국면에서 정산조정계수를 낮추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간 발전업계의 반응은 더 노골적이다. 정산조정계수 ‘0’을 내년 민간 발전사로까지 확대할 경우 거센 반발에 나설 기세다.

민간 발전업계는 우선 발전 자회사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발전 자회사는 민간 발전사들과 달리 한전과 사실상 연결재무제표로 묶여 있고 공기업이라는 특성 상 수익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게 이유다. 또 민간 발전사들은 정부의 요청으로 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할 예정인데 정부와 한전이 당초 민간 발전사 적정수익 보장 약속을 대놓고 파기하려 하고 있다며 경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할 경우 연초부터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업자는 몰라도 연중 진입하는 시운전·상업 발전기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며 "특히 민간 석탄발전은 투자비의 5% 수익이 고정돼 있음에도 한전이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산정해 투자비를 인정하지 않고, 운영기간 적정수익도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자회사처럼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강릉안인석탄화력발전의 경우 다음달 1호기 상업운전이 시작되는데 감가상각비, 협력업체 O&M(유지보수)비, 법인관리비 등 최소 비용이 연료비를 제외하더라도 월 150억원이 발생한다"며 "내년에 진입하는 2호기에 대한 조정계수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산조정계수 0이 되면 상업운전 시작과 동시에 300억원 이상의 적자가 확정된다. 여기에 1호기 시운전 잔여기간은 연료비 외에는 비용보전을 해주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들이 의견을 내고 정산조정계수 도입 취지에 맞춰 시운전 기간 이용률이 35%에 불과하니 연간 평균 정산조정계수 적용을 제안했으나 전력거래소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정산조정계수 조정은 국제유가 등 연료비 급등 때문이지, 한전의 적자 폭을 발전사에 전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해마다 연말 비용평가위원회를 개최해 다음 해의 정산조정계수를 결정한다. 통상적으로 연 1회 산정하지만 연료가격의 급격한 변동, 전기요금의 조정, 시장제도 변경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하거나 조정계수 산정을 위한 전망 자료 등이 실적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 경우 분기 단위로 조정계수를 재산정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한전과 발전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 산정기준에 따라 정산조정계수를 도출하면 산업부의 승인을 받아 확정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측은 "정산조정계수는 회의 내용은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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