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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사진=AF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이른바 ‘연준 피봇(pivot·방향 전환)’ 기대감이 급부상하고 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준의 긴축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위험선호 심리가 되살아난 모양새다. 4일(현지시간) 미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각각 2.8%, 3.06%, 3.34% 상승 마감했다. 이로써 3대 지수는 연저점에서 나란히 5% 이상 반등에 성공했다.
달러화 강세에 이어 미 국채 금리는 약세로 전환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ICE거래소에서 지난 주 114.04에 고점을 찍은 후 109.98로 고꾸라졌다. 한때 4% 선을 넘었던 10년물 미 국채금리 역시 3.6%대로 크게 내려갔다.
공격적인 통화긴축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연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통화정책을 바꿀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미 노동부가 공개한 8월 미국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서 채용공고가 전월보다 10% 급감해 1005만건을 기록한 것이 투자 심리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2020년 4월 이후 최대 낙폭이자 시장 예상치(1110만건)를 크게 밑돌았다. 연준은 그동안 기업들의 구인난과 이로 인한 임금 상승 압박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지난 4개월 연속 50bp(1bp=0.01%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한 호주 중앙은행(RBA)이 경기 둔화 등을 이유로 이날 금리를 25bp 인상한 것도 통화긴축 속도 조절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전날에는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9를 기록,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권에서는 시장의 이 같은 낙관론에 동조하지 않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아네타 마르코우스카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 피봇의 기대감에 대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며 "연준의 피봇 검토조차 임박했다는 말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연준 피봇이란 분위기를 억지로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자산운용사 PGIM의 그레그 피터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는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너무 앞서 나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 그들의 핵심 임무로 보고 있는데 그들 입장에선 금리를 더욱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연준 인사들은 이날에도 매파적인 통화정책을 시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취임한 필립 제퍼슨 이사는 이날 애틀랜타 연설에서 "물가 안정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추세를 밑도는 경기 성장 기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는 여전히 높고 이부분이 내가 가장 우려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 노동부의 JOLTs 발표에도 노동시강은 여전히 수급이 빠듯하다고 지적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2% 목표 수준으로 낮추는 일이 정말로 끝날 때까지 미 중앙은행은 차입비용을 높이고 제약적인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며 "6%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미국 임금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다. 연준이 이를 낮추도록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덜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향하는 ‘피봇’을 위한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 짚었다.
심지어 시장은 지난 여름에 연준 피봇 가능성을 한번 점친 적이 있었다. 당시 시장은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 폭을 50bp로 줄일 것이란 희망을 품고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8월말 잭슨 홀에서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매파적인 태도가 확인되자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발표될 경제 지표들이 연준의 통화경로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당장 7일에는 9월 고용지표가 나오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3일 발표된다(한국시간 13일 오후 9시 30분). 다만 ING 은행의 전략가들은 "미국 내 상황은 여전히 견고하다"며 "금요일(7일) 고용지표는 매파적 가격 재결정, 달러 강세에 대한 잠재적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