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한전 본사와 발전자회사 본사가 함께 있던 시절의 간판. 연합뉴스
정부가 공식 발표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에 대한 후폭풍이 에너지 공공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였던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5개 공기업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조직 내부는 물론 노조·지역사회·정치권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발전 5사(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의 통폐합 시나리오가 재점화되면서, 발전공기업 안팎에서는 “그간 수면 아래 머물던 개편론이 이번 부처 개편을 계기로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정책 주무부처, 산업부에서 환경부로 전환…탈석탄, 통폐합 가속화 예고
정부는 지난 7일 정부조직 개편방안 발표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핵심 정책인 탄소중립을 실현시키기 위해 산업부 에너지정책실 기능 대부분을 떼어내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전력 수급, 재생에너지, 원전정책, 에너지 공공기관 관리 등 핵심 기능이 환경부 주도의 신설 부처로 일원화된다.
이에 따라 한전, 발전공기업, 지역난방공사 등 약 20여 기관이 주무부처를 변경하게 된다. 다만 자원업무는 산업부에 존치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산업부에 남게 됐다.
에너지 공기업 내부에서는 이번 조직개편을 '신호탄' 삼아 기존부터 제기됐던 발전 5사의 통폐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발전공기업 내부에서는 기존에 논의돼왔던 '5사→2사 통합안'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석탄 중심의 중복된 설비와 인력 구조를 정비하겠다는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소 61기 중 37기가 동일 용량의 LNG 발전소로 대체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대선 공약에서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100% 실현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지만, 어쨌든 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평가한다.
현재 석탄발전소 61기 가운데 약 75%를 발전 5사가 운영하고 있다. 발전 5사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가 되면 석탄발전소 폐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인력, 예산, 역할의 재조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통폐합으로 갈 것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5개 발전사가 사실상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은 명분을 준 셈"이라며 “통합은 시간 문제라는 내부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기존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 등 5개 발전사는 지역별 분산 배치돼 각기 고유 기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탄소중립·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핵심 과제로 삼을 것이 유력해 석탄 중심 설비를 다수 보유한 기존 발전사들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수차례 “기후대응과 중복 설비 효율화를 위해 발전 5사 통합 필요성은 상존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조직개편은 그런 논의를 행동 단계로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제안한 발전자회사 구조개편 방안.
발전공기업, “5개에서 2개로?"…지역사회·노조, “산업 붕괴·고용 불안" 반발 거셀 듯
문제는 발전공기업의 본사 위치가 지역균형 발전과 직접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중부는 보령, 동서는 당진, 남동은 진주, 서부는 서울, 남부는 부산에 각각 본사가 위치해 있다. 이들 도시는 공기업 유치에 따라 세수 확대, 인구 유입, 민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통폐합이 추진될 경우 본사 기능 축소 또는 이전, 조직 재편에 따른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지며, 해당 지역에서는 '지역경제 붕괴' 우려마저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조직 이관과 통폐합 논의가 현실화되면 해당 본사가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와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각 발전사 본사는 인천, 진주, 대전, 서울, 보령 등에 분산돼 있으며, 이전 지역과 인구 유입·세수·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는 언제나 '기후'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지방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크다"며 “지역의견 수렴 없는 행정 밀어붙이기는 갈등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 발전사 노조 관계자는 “이미 사내에선 '두 회사 체제로 간다'는 시나리오까지 공유되고 있다"며 “지금은 어느 누구도 자리 보장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발전 5개사의 노조들도 내부적으로 공동대응 체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대응이라는 명분이 산업 인프라 해체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일관된 입장이다.
산업부 내부에서는 정부의 최종 방침이 확정된만큼, 전면적인 기관 이관 준비에 착수한 상태로 알려졌다.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과 관련된 조직법 개정안과 후속 시행령 정비, 공공기관 관리 체계 변경, 노사협의 절차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이라는 민감한 영역을 전면 개편하는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치권의 강한 이견, 지자체의 반발, 노동계와의 협상 난항 등 다양한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례 없는 조직 재편인 만큼 향후 노사, 지역, 국회와의 협의 과정을 차질 없이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