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독일마을 제10회 맥주축제 오프닝 공연 / 대한일보 |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으로 남해관광문화재단이 주최해 진행했으나, 올해부터 대면 행사로 전환해 국내외 많은 공연팀과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특별출연한 전국에서 모인 한국파독연합회 회원들과 혼성합창단의 열창으로 축제는 더욱 빛났다. 이날 행사를 위해 독일현지에서 교민으로 생활하다 잠시 귀국한 회원들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회원들이 인상적 이였다.
▲김춘동 한국파독연합회 회장 |
한국파독연합회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대한민국정부가 독일정부의 요청으로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파견해 달라고해 전문 인력으로 18,993명이 파견되어 현지에서 젊은 나이에 국가의 경제발전과 각자의 가정경제에 기여함은 물론 어려움 속에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공부를 계속해 현지에 적응하신 훌륭한 세대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이분들이 연세가 들어 연로해서 고국에 정착하고 싶어도 경제적 여건이 어렵거나 국가적지원이 안돼서 이분들에 대한 의료, 복지혜택은 물론 경제적인 지원이나 수익을 보장하는
범국가적인 사업이 주어지기를 이분들은 희망하고 있다.
▲남해독일마을 맥주축제에 특별출연한 한국파독연합회 남녀 혼성그룹 ‘글뤽 아우프 합창단/대한일보 |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의 김춘동 회장은 "지금부터 50년전 우리나라는 너무나 가난했으며,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었고 "북한보다도 더 가난했으며, (암울했던) 우리 대한민국은 희망마저 없었다"고 상기했다. "원조가 없으면 금방 망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또한 가족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 나아가 정부의 시책 일환으로 독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말, 목숨 걸고 열심히 일했다."며 "그런가 하면 부모 형제가 그립고 찾아오지 못해, 그리워도 애환을 버터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몸이 아파도 참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파독연합회 회원들이 맥주축제현장에서 기념 / 대한일보 |
현지 언론에서 조차 "이분들은 사람이 아니고, 천사들"이라 극찬 했으며, "천사들 역시 고향이 그립고 자신의 부모가 그리웠을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그때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면서 위안을 삼으며, 수많은 세월을 눈물로 보냈다"며 "우리의 피의 가치를 받은 달러 한 푼 두 푼을 고국 한국으로 보냈다."고 주지했다.
▲남해독일마을 맥주축제 행사 참여현장에서 한국파독연합회 회원들 / 대한일보 |
▲남해독일마을 맥주축제 행사에 참여한 한국파독연합회 회원들 / 대한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