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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사장 정승일)이 전기요금 점진적 인상으로 계통망 확충, 전력수급 안정, IT 스타트업 육성, 신재생에너지·수소 지원, 자원안보 강화 등 전력시장 ‘맏형’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해 최대 40조원 규조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이 조속한 경영 정상화로 가는 길은 4분기 전기요금 인상에도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는 지적이다. 한전이 전력을 사오는 가격의 기준이 되는 전력구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급등세가 꺾이기는커녕 거꾸로 역대 최고기록을 잇따라 다시 세우면서 전기요금 인상 효과를 흡수, 물가 불안 속 고심 속에 내놓은 정부 조치를 무색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4분기에만 올린 게 아니다. 2분기부터 3분기 연속 인상했으나 지난해 전기요금을 연료비 변동에 맞춰 조정하는 연동제 도입에도 인상 폭이 연료비 상승폭에 크게 못 미친 것이다.
하지만 한전은 4분기 전기요금 인상으로 경영 정상화의 걸음마는 뗐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이번에 전기를 많이 쓰는 사업자에 더 비싼 요금을 매기는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제를 도입, 전력 수요의 70∼80%를 차지하는 산업용·일반용 전기요금을 주택용의 약 1.5∼2배 안팎 올렸다. 서민 가정에 직접적인 타격을 미치는 주택용보다는 산업용·일반용 사용자의 부담을 늘렸다. 당장 서민 물가에 충격을 덜 주면서 한전의 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전으로선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재무개선 대책으로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점진적인 경영 정상화의 불씨를 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한전이 국내 대표 공기업이자 전력시장을 이끄는 기업으로서 앞으로 재무개선 노력과 함께 전력 산업 발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할 재정립 모색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들이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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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국내 최대 공기업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주요 국정과제인 탄소중립을 최전방에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탈석탄 정책에 따라 주력사업인 석탄화력 발전의 비중을 줄여왔다. 대신 발전 효율성은 낮은 반면 비용은 높고 정부 보조금 의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에 많은 힘을 쏟았다. 이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발전 연료비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연료비 고공행진에도 정부가 민생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잇따라 동결하면서 수익구조가 취약해졌다. 이처럼 경영에 타격을 받으면서 정책 수행 동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결국 버티다 못한 한전은 올해 전격적으로 요금을 인상했다.
◇ 송전망 확충, NDC·탄소중립, 한전공대 등 정책 과제 산적
한전은 당장 동해안 송전망 확충을 비롯해 2030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2050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막중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한전이 지난해 세운 제9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는 2034년까지 총 29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돼 있는데 NDC 상향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비중이 커지면서 관련 투자가 더 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50년 석탄발전 전면 중단’ 선언과 관련해선 ‘좌초자산’(급격한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가치 하락 자산)에 대한 보상과 석탄업 종사자 보호 등 공정하고 질서 있는 감축 방안도 필요하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도 개교했다. 한전에 따르면 한전공대 설립·운영에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개교 10년 후인 2031년까지 1조6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설립 비용만 6210억원이며, 연간 운영비는 641억원에 달한다. 한전은 자회사들과 함께 출연금을 마련할 방침이지만 자회사들 경영환경이 어려운 데다 지나친 비용 투입으로 결국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등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남도와 나주시의 대학발전기금 2000억원이 확보됐지만 개교 이후 10년간 매년 200억원씩 받는 구조라 당장 큰 도움은 안 된다는 평가다. 이에 정부는 전기요금으로 조성되는 전력기금 일부를 끌어다 쓸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시행령까지 개정했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한전이 이같은 과제들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추가적인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 kWh당 20원 가까이 전기요금을 인상했지만 전체 전력 판매액 중 산업용과 일반용 비중 등 을 고려하면 적자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연간 20원 가까이 인상했지만 SMP 1년만에 두배 이상 올라 적자 개선 한계
한전은 지난달 30일 4분기부터 주택용, 일반용(갑), 산업용(갑),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 심야 등 모든 용도의 전기요금을 kWh당 2.5원 인상하기로 했다. 앞서 인상된 16.9원까지 더하면 올해 연간 전기요금 인상분은 1㎾h당 총 19.3원에 달한다. 이같은 인상폭은 국제유가 폭등 시기인 2012∼2013년 세 차례에 걸쳐 4∼5%씩 총 15% 가까이 인상한 이후 10년만에 처음이다.
한전에 따르면 전기요금을 ㎾h당 1원 인상할 경우 지난해 전력 사용량을 기준으로 한전 연간 수입은 53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전기요금 인상으로 산술적으로는 약 10조원의 수입이 늘어나지만 SMP가 지난해의 두배 넘게 급등해 인상 효과가 크지 않다.
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9월과 10월 평균 SMP는 각각 kWh당 232.82원, 242.38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98.77원과 107.76보다 두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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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4일까지 평균. 자료:전력거래소 |
즉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한 ㎾h당 전력구입단가는 지난해 평균 93.9원이었지만 올해는 평균 183.69원으로 100% 이상 급등했다. 반면, 한전의 수입인 전력판매단가는 지난해 ㎾h당 평균 108원에서 올해 110원으로 2.5% 수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연간 20원을 올렸지만 여전히 kWh당 80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인 약 15조원의 영업손실로 이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전의 적자규모가 최대 4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여기에 국제 연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요금 인상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다. 한전은 당초 연료비 상승 등을 고려할 경우 손익분기점 달성하려면 ㎾h당 최소 50원 인상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청해왔다. 이번에 인상된 요금의 5배 정도는 인상돼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해도 적자 개선 효과는 최대 3조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전기요금은 유럽 등 주요국에 견줘 여전히 낮으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에너지 절약이 필수적이지만 ‘값싼 전기요금’이 소비자의 절약을 유도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현재 한전은 전기를 ㎾h당 250원에 사서 소비자에게 120원에 팔고 있다. 유럽 전기가격의 1/10도 안 된다. 한전 측 비용 20원까지 감안하면 전기를 팔 때마다 150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사기업이라면 벌써 망했을텐데 공기업이라 버텨주고 있다"며 "한전이 망가지면 전력공급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도 턱없이 부족하다. 급격한 부담 증가를 막을 수 있도록 유럽처럼 몇 배까지 인상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체력을 갖출 수 있게 40∼50%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에너지 절약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현명한 대처로 올 겨울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