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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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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기업의 존재 의미 ‘영속성’ 존중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9.20 10:10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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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기업이 영속할 수 있는 비결을 일본 ‘야마토’의 3대 사장 하세가와 스미오(長谷川澄雄) 사장은 ‘혁신의 연속’ 때문이라고 말한다. 120년 넘게 오로지 ‘문구용 풀’만을 만들어 온 야마토의 성장과정을 하세가와 사장이 정리한 책 이름이 바로 ‘혁신의 연속이 노렌을 만든다’이다.

노렌(暖簾)이란 일본 상점의 출입구에 내걸어 놓은 천을 말한다. 원래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거나 바람이나 햇볕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노렌이 걸려 있으면 지금 영업 중이고, 없으면 잠지 쉬는 중이거나 금일 영업이 끝났다는 뜻이다. 노렌이 보이지 않으면 굳이 상점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노렌이 점차 상점 이름 또는 가문의 문장을 새겨 그 상점을 상징하거나 가게의 신용이나 품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용도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무언가 문제가 생겨 가게의 신용이나 명성이 훼손되는 것을 ‘노렌에 흠집이 났다’, 충성스런 직원에게 같은 이름의 가게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을 ‘노렌와케’, 일본 회계학에서 영어 ‘goodwill’에 해당하는 용어를 ‘노렌다이’(노렌 값)라고 한다.

상인에게 있어 노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신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례로 오사카 상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자 ‘오사카 노렌 백년회’를 결성했고, 회원들이 ‘오사카 노렌 상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상법에서는 노렌을 가리켜 영속성의 상징이자 경영이념의 표명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영속하는 것’을 ‘기업의 진수(眞髓)’로 제시하고 있으며, 장사를 시작했으면 이어가는 것이 도리이고 지속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의미라는 것이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 수가 무려 3만3079사개에 달한다. 가장 오래된 기업은 목조건축공사를 하는 ‘곤고구미’로 1400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100년 기업이 1만2780사, 독일은 1만73사이다. 한국 100년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경방 등 단 10곳뿐이다.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 이후만 본다 하더라도 ‘60년 기업’이 겨우 569개(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한다(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에는 ‘지속적인 혁신’이 존재하지 않는가. 한국인이라서 끈질긴 집념도 없고 창조적 DNA도 없다는 말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100년 기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기업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창업자가 사망하면 정부가 기업을 거의 몰수 수준으로 상속세를 매겨 견딜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가족의 생활근거가 되는 재산에 대해 최고세율 60%까지 상속세·증여세 명목으로 정부가 가져간다.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은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 공동체’ 소유다. 열심히 재산을 모은 이유는 ‘가족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가족소유 재산의 존재는 가족의 해체를 막고 가족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어도 직계 가족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징수하면 안 된다. 이를 국가가 약탈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한다. 더군다나 그 정도를 넘어 50% 이상 빼앗는 것은 착취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100년 기업 10곳을 보면, 상속 문제가 없는 우리은행이 재계순위 39위, 신한은행이 42위이다. ㈜두산이 69위고 나머지는 100위 내에 들지 못한다. 처참한 실정이다.

조선시대 소작농이 도지(賭地)로 농사지은 곡식의 반을 토지 주인에게 바쳤다. 도지는 일종의 소작료다. 일제는 국유지의 소작료를 3할에서 5할로, 일반소작지의 소작료를 5할에서 6할로 인상했고,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에 따라 수리조합비·비료대 등 부담 일체를 소작인에게 전가해 결국 7∼ 8할의 소작료를 수탈했다. 한국 기업은 현대판 노예며 정부는 기업에게 땅 한 뙈기 빌려준 적도 없으면서 60%를 수탈하는 ‘리바이어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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