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6월 27일(월)



[이슈&인사이트] 산재예방 정책, 제대로 성과 내려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5.18 10:4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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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막을 내린 문재인 정부의 산재예방행정은 한마디로 이런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핵심 국정과제로 산재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를 내걸면서 역대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에 엄청난 자원을 투여했지만 결과는 목표에 크게 미달했다. 행정인원·예산을 2∼3배 늘리고 법치를 무시하는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요란했지만 역대 정부의 산재 사망사고 감소실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초라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더 한심한 것은 감소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게 된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성찰해야 함에도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점이다. 새 정부가 산재예방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이 분석·성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법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위험의 외주화’, ‘엄벌 곧 정의’ 프레임에 갇혀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찾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이 패착의 큰 요인이다. 사안의 복잡성과 메커니즘 등을 종합적이고 전문적으로 들여다 볼 실력 자체가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을 반복 재생산했다. 그 결과 산재예방법제는 난마처럼 꼬이고 안전원리가 뒤틀리고 말았다.

시스템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보여주기 행정에 급급한 점도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물량 투입과 같은 땜질처방과 ‘기승전-처벌’ 식의 손쉬운 방법에만 의존했다. 마치 엄벌이 유일한 처방인 양 접근하면서 융단폭격 제재를 퍼부었다. 모든 책임을 사고발생 기업으로만 돌리고 스스로는 반성한 적이 없다. ‘예방’행정은 존재감이 없었다.

새 정부가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산재예방에 대한 철학으로 무장해야 한다. 철학이 없는 건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철학이 없다보니 방향성 없이 제재 위주의 행정을 하는 것이다. 철학을 바탕으로 산재예방법제를 정비하고 집행해야 한다. 독·영·일 등 산재예방선진국의 산업안전보건법제에서 정작 배워야 할 건 산재예방에 대한 철학이다. 현재의 산재예방법제·행정에 철학을 불어넣어야 한다.

둘째, 실효성 없는 법정책을 혁신해야 한다. 정작 정의로운 건 처벌 강화가 아니라 처벌요건을 정교하고 실효성 있게 만드는 것이다. 처벌을 아무리 강화한들 처벌요건이 엉성하면 엄벌 자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정책이 실효성을 갖추어야 산재 감소뿐만 아니라 엄정한 법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법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을 대폭 높여야 한다.

셋째, 조직원리의 기본인 역할과 책임의 명확한 설정을 법규에 반영하고 실천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원청의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개편해야 도급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법을 잘 지키라고 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키는 무책임한 일이다.

넷째, 산재예방행정조직을 전문화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이다. 진정성이 있어도 실력이 없으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민주당은 2023년 1월에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한다고 공언만 했을뿐 후속조치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직후 여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즉흥적으로 청 설립을 발표하고 그 후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았다.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이다. 새 정부는 민주당의 설익은 주장이긴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청이 산재예방행정을 선진화하기 위한 기본전제라고 생각하고 설립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산재예방을 위해 외형적으론 열심히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실력과 진정성 모두 부족했다. 실력과 진정성이 없는 개혁은 개선이 아닌 개악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진정성부터 가져야 한다. 관료에 끌려 다니는 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 산재예방선진국과 비교하여 행정의 전문성과 진정성이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다. 이를 위해선 전문성을 바탕으로 행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어설픈 이념과 보여주기가 아닌 실효성을 행정의 요체로 삼도록 해야 한다.

산재예방 정책에서 새 정부의 성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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