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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에너지공기업들이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50탄소중립,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로 상향, 탈(脫)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공기업들에 수많은 과제를 안겨줬다. 다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새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현 정부의 정책기조유지 여부는 물론 사장단이 교체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실제 야당은 물론 여당인 이재명 후보도 최근 들어 탈원전 정책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한전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국제유가와 천연가스(LNG)가격이 급등했지만 전기요금에는 반영하지 못해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 정부의 방침대로 내년에도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과감하게 줄일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맞물려 대규모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 12월 말까지 내년도 신년업무보고를 해야하는 공기업 실무자들로썬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12일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5년 내내 에너지전환에 따른 수많은 세부 정책들을 발표 했을 뿐 실제로 수행된 것 별로 없다"며 "앞으로 공기업들이 수행해나가야 하는데 내년 3월 대선이라는 큰 변수가 있어 사업계획 수립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정부 출범 당시 국정과제가 100개였다. 내년 하반기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도 수많은 정책들이 나올 것"이라며 "지금 현 정부의 기조에 맞춰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도 하반기에는 새 정부 정책에 맞춰 대폭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공기업들은 경영평가에서 국정과제 이행 여부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수가 많은 만큼 현재로썬 에너지 공기업의 기본 역할인 안정적 전력수급, 비용절감을 통한 재무성과 개선 등 기본에 충실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내년 RPS 부담 늘어…전기요금 인상 요인 쌓여가
한편 내년초 북반구의 겨울이 매우 추울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세계 각국은 에너지 수급 위기를 막기 위해 에너지 확보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공기업들은 ESG 경영 및 탄소중립을 이유로 에너지 개발 및 구매를 위한 의사결정 및 자금조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에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비율도 올해 9%보다 3.5%포인트 높은 12.5%로 늘어난다. RPS 비용 증가는 고스란히 한전의 부담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RPS는 발전 공기업과 민간 발전사 23곳에 부과되지만, 이들이 지출한 RPS 비용은 모두 한전이 보전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전의 RPS 비용은 2016년 1조4104억원에서 2020년 2조247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RPS가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한전 부담이 3200억원 정도 증가하는 걸로 추산된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면서 석탄·LNG 등 연료비가 갈수록 치솟는 것도 부담이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는 "한전 수익 구조를 감안할 때 매해 2% 이상씩 전기료를 올려야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비율을 맞출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에너지 대란 극복을 위해 화석연료와 결별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이 많은데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높은 유럽도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다"며 "석탄발전소의 대폭 감축이 예정돼 있는 지금, 에너지 공급 안정성이 훼손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국민들은 이에 반발할 것이다. 화석연료의 안정적 확보 및 활용을 위한 인프라를 계속 지켜내고 투자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새정부 출범 후 사장 교체 변수도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것도 발전업계엔 핵 폭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대재해법은 모든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법이지만 법안 도입의 시초가 된 것은 2018년 발생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본부의 고(故)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였다는 게 정설이다. 발전업계는 이번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부담을 더욱 크게 갖게 됐다. 사망사고 시 기업 최고 경영자가 징역형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경영의 최우선은 안전에 둘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 경영평가부터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감점 부과를 확대하는 등 안전관리 기준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올해 일제히 취임한 에너지 공기업 사장의 교체 여부도 주목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전 그룹사 사장단은 모두 임기를 남겨둔 채 사임했고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된 바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이번에도 정권이 바뀔 경우 사장단이 교체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 올해 4월 한전 김종갑 사장이 임기 만료로 물러난 후 새로운 사장을 선임할 당시 지원자가 없어 재공모를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여 남은 시점이라 차기 사장은 정권 교체 후 물러나는 ‘시한부’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