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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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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비정규직 늘리는 ‘역주행’ 노동정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11.29 09:52

우재원 노무법인 신승 파트너/ 공인노무사



우재원 노무법인 신승 파트너, 공인노무사

▲우재원 노무법인 신승 파트너/ 공인노무사

"샤넬은 지금 사는 것이 가장 싼 가격이다." 요즘 명품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예로부터 유별났으나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우리나라 명품시장 규모는 125억420만 달러(약 14조8300억원)로 세계 7위로 올라섰다. 독일을 앞섰으며 한국보다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뿐이다. 지난해 세계 명품시장 규모가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무려 19% 줄었음에도 한국에선 고작 0.1% 감소에 그친 사실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단순히 구매율이 높은 정도가 아니라 구매조차 힘들다. 백화점의 명품관이 개점하기 전에 미리 대기했다가 오픈과 동시에 매장으로 들어가는 ‘오픈 런(open run)’ 현상은 일상이 되었고 줄서기 알바까지 등장하였다. 명품의 인기는 기업 가치 상승으로도 이어져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세계 1위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명품가방이나 명품시계라고 해서 반드시 일반제품보다 월등한 품질은 아니겠지만, 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이는 단순히 소비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명품가방과 다르게 양질의 일자리는 공급이 적어서 오픈 런이 빈발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된다. 능력 있는 근로자라면 누구나 수준에 맞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어느 정권이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를 목청 높여서 부르짖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정부가 세금을 지원하여 억지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 오히려 일자리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일례로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목돈 마련의 기회를 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의 경우에도 중도해지자가 25%에 달한다. 단순히 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2년 동안만 근속하면 국가에서 약 1300만원 가량을 일시에 지급함에도 그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이다. 이는 지원금을 족쇄 삼아 갑질, 낮은 임금 강요, 불합리한 지시 등 중소기업 스스로 근무환경의 질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규직 채용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1년 8월을 기준으로 대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는 284만1000명이며 이는 작년 대비 32만명(12.7%)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은 수치이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806만6000명) 가운데 대졸 이상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도 35.2%로 역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의 노동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8월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 중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자리 정책 방향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22.4%를 차지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사회경험이 적은 20대 청년들도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결국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역할이므로 정부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노동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고용 확대를 유도하여 우수한 근로자들이 더 많이 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기업과 근로자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이다. 기업 친화적 정책이 반드시 근로자를 억압하거나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 고용의 주체인 기업을 위하는 것이 결국 근로자를 위하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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