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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산업계가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을 놓고 계산기 두드리기에 분주하다. 일명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가 오는 2030년까지 추가로 줄여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소 무려 33% 증가한데 따른 것이다. 특히 산업계는 가뜩이나 온실가스 감축 관련 기존 목표 이행에도 버거운데 큰 폭의 추가 감축 숙제를 또 떠안게 되자 온실가스 감축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기술 개발, 시설 개선, 배출권 또는 신재생에너지 구입 등 투자로 이어져 결국 비용 상승의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에 더 크게 다가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은 발전,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이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규제 강화가 우리나라 주력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법으로 기술 개발, 시설 개선 등 투자로 온실가스를 직접 줄이는 것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권 또는 재생에너지전력을 돈 주고 사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간접 인정받는 게 있다. 이 가운데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매하는 게 재생에너지전력을 사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더 싼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 산업계는 에너지 다배출 업종을 중심으로 탄소중립기본법의 국회 통과에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 2030 NDC 상향으로 에너지 다배출 산업계에는 부담↑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전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으로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더욱 커졌다. 2018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2760만톤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 4억7290만톤까지 감축해야 한다.
정부의 기존 2030 NDC는 2017년 대비 24.4%이었다.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10만톤으로 2030년 4억7290만톤을 감축한다고 하면 33.3%를 감축해야 한다. 이번 탄소중립법의 국회 통과로 기존 목표보다 8.9%포인트 강화한 셈이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전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산업계 의견이 2030 NDC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단체들이 2030 NDC 상향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지난 2019년 기준 제조업 비중은 우리나라가 28.4%로 EU(16.4%), 미국(11.0%)에 비해 높아서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정점부터 탄소중립까지 준비 기간은 EU(60년), 미국(45년)에 비해 짧은 32년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 5단체는 △경제계와 소통 활성화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 강화 △안정적·경제적 에너지 공급 △탄소감축 설비투자 지원 확대 △예측가능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운영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온실가스 감축량 많아진 만큼 기업들이 구매해야 할 온실가스 배출권도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 배출권 수요 확산 전망에 주목받는 재생에너지·RE100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이처럼 커지자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RE100’(사용전력 100% 재생에너지 조달) 이행 방안도 주목받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맺는 것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오는 것이다.
전력거래소의 전력부문 온실가스 배출계수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전력 1MWh를 조달하면 온실가스 약 0.46톤을 감축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021 온실가스 배출권(KAU21) 가격은 전날 거래 기준 1톤당 2만8000원이다. 이 배출권 가격을 재생에너지 전력 가격으로 환산하면 1MWh당 1만2880원(2만8000원×0.46)이 된다. 만약 온실가스 감축 대상 산업계가 1MWh당 1만2880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3자 PPA나 REC 구매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면 배출권을 직접 사는 것보다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게 온실가스 감축에 더 이득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이 배출권 가격보다 낮아지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일반기업이 구매 가능한 REC 거래시장에서 성사된 첫 REC 거래 가격은 1MWh당 4만9049원이다. 발전공기업만 참여하는 REC 현물시장 가격도 지난달 평균 기준 1MWh당 2만9912원이다. 배출권 거래가격에 비하면 무려 2.5∼4배 정도 비싸다.
REC 현물시장의 재생에너지 전력가격 1MWh 2만9912원과 비교할 때, 배출권 가격은 1톤당 6만5026원(2만9912원×2.17)보다 높아져야 배출권 구매보다 재생에너지 조달이 기업 입장에서 더 이득이 된다. 전력부문 온실가스 배출계수 0.46을 역으로 계산할 때 그렇다.
정주현 브이피피랩 이사는 "배출권 공급이 많지 않아 가격이 한 때 2만5000원에서 4만원까지 오르는 등 가격에 대한 정확한 평가하기는 어려웠다"며 "이번 법 통과로 배출권 시장 참여자들이 많아지고 시장 가격이 안정화되면 기업들에게 배출권과 연계된 RE100을 중개해주는 에너지 IT 업체에는 호재"라고 설명했다.
진우삼 RE100 위원회 위원장은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초기에는 REC 등으로 RE100을 이행하지만, 앞으로 장기적으로 볼 때는 기업들이 PPA를 선호한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추세도 PPA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계적인 환경정보 평가기관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올해 초 발표한 ‘2020 RE100 연차보고서’는 RE100 참여 글로벌 기업 중 40%의 기업들이 PPA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답해 PPA 참여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정우식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은 이번 탄소중립기본법 통과에 대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글로벌 산업과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된 상황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특성상 강력한 탈탄소 노력과 신속한 에너지전환만이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가 살 길"이라며 "탄소중립기본법 통과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국내 산업과 경제를 위한 적절한 제도환경을 마련했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2030 NDC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가 권고한 2010년 대비 45% 감축으로 하지 않고,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으로 한 것은 기후위기 심각성에 비춰봤을 때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