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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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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ESG 입법, 기업에 족쇄 되지 않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7.26 09:00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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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펑펑 울었다는 독서 후기가 많이 달린 소설 ‘칼에 지다’를 읽었다. 아사다 지로(淺田次郞)가 1998년에서 2000년 사이 ‘문예춘추’에 연재한 후 단행본으로 발간한 책을 2004년 양윤옥님이 번역했다. 덤덤한 성격 탓인지 필자는 울지는 않았다. 이 책 하권 258쪽에는 "그러니까 잔뜩 비뚤어져 있었던 거야. 세상 그 자체가. 사람이 제 본분이라는 걸 잃고 구호만 외치며 마구 내달리면 세상이 그렇게 다 비뚤어져"라고 쓰여 있다.

2016년부터 몇 년간 ‘스튜어드십 코드’가 광풍처럼 산업계를 휩쓸었다. 세계 20개국이 이를 도입했지만 한국처럼 이것을 무기삼아 기업을 협박한 나라는 없었다. ‘인게이지먼트 (engagement)’라고 불리는 ‘목적을 가진 건전한 대화’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당시 국민연금이 소위 ‘총대’를 맸다.

이번에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국민연금이 준비하고 있다. 국회도 가만있지 않는다. 부지런한 국회의원들이 벌써 17개 이상 ESG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 중 ‘자본시장법개정안’(의안번호 제2102852호)도 나와 있다. 이 법안을 보니, 아사다 지로가 말한 대로 "… 구호만 외치며 마구 내달리면 세상이 그렇게 다 비뚤어져"라는 말이 생각난다. ESG와 무관한 이념만 잔뜩 들어간 법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ESG가 이해관계자와 이익을 나누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구현하라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 법안도 그렇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일 뿐이고, ESG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제안하는 이유로, "… 임원에게 과도한 보수를 지급하는 기업, 여성 직원에 대한 복지가 미흡한 기업, …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거나 노사관계가 비협력적인 기업 등은 점차 그 미래 경쟁력이 낮게 평가되고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이 새로운 투자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주권상장법인의 사업보고서 기재사항에 ‘임원 및 보수총액 기준 상위 5명 평균 보수를 임원을 제외한 전체 근로자 평균 보수로 나눈 비율’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것은 임원 보수 평균과 근로자 보수 평균을 비교해 근로자들의 분노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는 CEO 연봉이 근로자 연봉보다 1000배 많은 경우도 있다. CEO 연봉이 높은 이유는 CEO 효과 때문이다. 오늘날엔 경영자 한 명의 능력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만큼 더 중요해졌다. 기업은 빵을 나눠 먹는 조직이니 이 점에서 군대나 다름없다. CEO는 그 군대의 사령관이다.

임진왜란 때 신립은 조선 최고 명장이었고, 군부의 상징이었다. 그는 조령(鳥嶺)에서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대신, 남한강을 등진 개활지(開豁地) 단월역 앞에서 배수진을 쳤다. 일본 조총 부대의 막강 화력에 병사 1만 6000명 대부분을 잃고 그는 탄금대에서 죽었다. 일본군은 한양까지 일사천리로 치고 올라갔으며, 선조는 황급히 평양으로 도주했다. CEO 리스크도 이와 같다. 기업이 단박 망할 수 있다.

또 법안은 ‘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과 전체 여성 근로자 평균임금을 전체 남성 근로자 평균임금으로 나눈 비율’을 공시하게 했다. 여성근로자 평균임금과 남성근로자 평균임금 비율을 비교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능력과 직장 내 직급을 무시하고 단순히 남녀 평균임금만 비교해 공시하라고 강요하면 결국 직장 내 젠더 갈등만 부추기게 된다. 위 법안에서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들은 경영을 활성화해 기업 가치를 제고한다는 본래의 목표와는 무관하고, ESG와도 무관하다. 남녀평등 코스프레나 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기업이 ESG를 강조하는 까닭은 주주의 이익을 더 잘 실현시키기 위해 이해당사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블랙락(BlacKRock)도 자신들에게 투자금을 맡긴 투자자보다도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우선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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