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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첫째, 사업자인 한수원이 계획한 운영허가 시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시점은 한수원이 향후 사업 운영을 위하여 자체적으로 수립한 것이지 이에 따라 허가를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것이 규제의 독립성이다. 규제 차원의 검토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허가를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신한울 1호기가 신고리 3·4호기에서 국산화 부품이 추가된 노형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허가시점을 예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심·검사완료후 1년은 좀 길었다.
둘째,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달 2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신한울 1호기의 운영허가 승인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요청하겠다고 한 것은 옳은가. 옳지 않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위협이 되는 정치적 간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독립적으로 허가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셋째, 원안위의 규제행정은 적절했는가. 아쉬움이 있다. 원자력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지난 백여 년간 체계적인 노력이 축적되었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전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안전성의 원칙도 제시된다. 안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설계의 요건, 품질보증, 확인 및 관리 감독 등의 계획이 수립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적이고 행정적인 토대가 공학적 기반 위에 수립되어야 안전성이 확보된다.
안전규제 역시 내재된 철학이 있다. 그런데 실무를 하다 보면 철학을 잊게 된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기후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인데 재생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수단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형국과 같다.
우리나라 원안위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는 안전규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원칙이 동일하지는 않으나 철학적 궤는 같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원자력시설을 안전하게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한 철학을 담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수입하면서 규제체제도 함께 수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US NRC의 규제원칙에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규제원칙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효율성(Efficiency)이다. US NRC는 효율성이란 ‘심사가 끝나면 지체 없이 허가를 내어주는 것’으로 해설하고 있다. 왜 이러한 원칙을 세웠는지 알기 위해 규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규제는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무엇이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중의 안전과 환경보호라는 공공적 가치를 위하여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대중과 환경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공공적 목적도 중요하지만, 사업자의 권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공적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사업자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효율성이다. 그래서 심사를 마치면 지체 없이 허가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모르고 실무에만 종사하다가 보면 원자력 안전규제를 수행하는 사람이 자신을 ‘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신한울 1호기의 운영허가를 다루는 원안위의 회의록을 보면 도처에 이러한 갑질의 흔적이 보인다. 사업자를 마치 죄인 다루듯 하는 것이다.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려는 것이지 사업자가 죄를 지어서 이 자리에 끌려 나와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인민재판 하듯이몰아붙이고 법에도 없는 주문사항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원안위 위원이 특정 분야에만 전문성을 보유하다 보니 규제의 원칙을 모를 수도 있다. 원안위의 회의체제가 이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해 4월에 심사와 검사를 마치고도 허가를 승인하는 회의체를 운영하는 데에만 1년을 넘긴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독립한 지 10년이 되면서 조직도 인력도 늘었지만, 규제의 원칙에서는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