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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여기 있는 칩, 이 웨이퍼, 배터리, 광대역, 이 모든 것은 인프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한 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생겨나는데 삼성전자는 선장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 중인 탓에 각종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다. 팻 갤싱어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재진출, 차량용 반도체 제조 등 결단을 내리는 모습과 대조된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열린 ‘반도체 회의’ 내용은 미국이 공격적 투자를 예고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 TSMC, 미국 HP·인텔 등 19개 글로벌 기업이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백악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했는지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자국 내 생산 설비 증설, 차량용 반도체 공급 확대, 중국과 거리두기 등을 언급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모두 부담스러운 의제들이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 역량을 키우길 원한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중국이 최대 고객사이고 나머지는 미국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며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국가 차원의 노선을 정하거나 차량용 반도체 역량 강화 등 투자를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반도체 사업부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글로벌 시장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와중에 ‘총수 부재’ 탓에 주요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1년 사이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부문 인수를 위해 10조원을 베팅하고 △미국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400억달러(약 45조 1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으며 △TSMC는 파운드리 사업에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2조원)를 쏟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100조원 넘는 현금을 쌓아두고도 이렇다 할 투자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 없는 삼성전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경쟁 상대들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바이든 시대’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전날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 삼성전자는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했지만 TSMC는 류더인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미국 인텔의 경우 올해 초 펫 갤싱어 신임 CEO 임명 이후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반도체 회의’가 끝난 이후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를 증산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인텔은 "전세계 반도체의 3분의 1은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미·중 무역분쟁의 수혜를 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생산·공급 사이클을 감안해 적재적소에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평상시라면 CEO 수준에서 대응이 가능하지만 최근처럼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 총수가 없다는 것은 삼성전자에 분명 악재"라고 짚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