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04일(목)

[EE 칼럼] 자장면, 그 일상의 그리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1.19 16:58   수정 2021.01.19 16:59:23
전경우

▲전경우 미래커뮤니케이션 대표

1882년 임오군란 때 중국 청나라 군대와 함께 중국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중국 음식도 건너왔다. 일제 말기 화교가 6만 5천 명 정도였고 중국 음식점도 300 개 쯤 되었다. 이때만 해도 중국 음식점의 손님은 주로 중국 사람들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의 정책에 따라 무역을 할 수 없게 된 화교들이 음식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1958년에 중국 음식점이 2 천개 가까이로 늘어나는 등 빠른 속도로 확장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이 가속화 하고 도시 인구가 늘면서 외식 사업도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밥을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전에 먹어보지 못한 별식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중국 음식 특유의 향료 대신 고추나 후추를 사용하면서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든 바로 배달되는 덕분에 인기가 좋았다. 자장면은 우리나라 배달 음식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다.

자장면이 인기가 좋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착한 가격 덕분이었다. 1956년부터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중 70 퍼센트가 밀가루였다. 밀가루 값은 쌀에 비해 엄청나게 쌌고 이 때문에 중국 음식점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자장면을 만들 수 있었다. 부산의 밀면도 미국산 밀가루 덕분에 생겨났다. 분식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이 나오면서 자장면은 더욱 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장면은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자장면에 요리를 곁들였지만 고만고만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장면 한 그릇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시골에서는 장이 서는 날에나 한 번씩 맛보는 음식이었다. 군대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도 자장면이었고 당구장에서 가장 많이 시켜먹는 음식도 자장면이었다. 그렇게 자장면은 대한민국 최고 외식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이후 외식 산업도 변화를 맞았다. 맥도날드 등 서구 패스트 푸드점들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았다. 햄버거와 피자가 새로운 음식으로 각광받았고, 양식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불렸던 서양 음식이 이탈리아 프랑스 등 국가별 음식으로 세분화 되었다. 경양식이라는 말도 자취를 감추었다.

옛날 궁중에서나 먹던 불고기도 대중 속으로 나왔다. 불고기는 일반 서민들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었고,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도 국제 대회 때나 한 번씩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다.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면서 외곽 지역의 음식점을 찾는 것도 유행하게 되었다. 곳곳에 ‘가든’이 생겨나고, 춘천 닭갈비 같은 지역 특산 음식들도 앞 다퉈 소개되었다.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일본 요리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대 들어 일본 요리가 인기 음식으로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서양의 패스트푸드와 중국 음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 과거 궁중의 내관이었던 사람들이 차린 요릿집을 중심으로 상류층이나 즐기던 한식도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음식도 차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곳보다 인구에 비해 음식점이 많다. 과거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음식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마음 놓고 외식을 할 수도 없고 마음 편히 장사도 할 수 없게 됐다. 세상이 달라지고 음식도 좋아지고 누구나 좋아하는 것 먹으며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왔다. 그런데 그 소박한 희망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자장면 시키신 분" 하고 외치는 소리가 빨리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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