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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글로벌 시장 환경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표 기업 삼성그룹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 이재용 1078일만에 재수감···‘뉴삼성’ 이행 차질 불가피
18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이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최서원(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건넸다가 돌려받은 말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이 부회장은 영장이 발부돼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측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 86억 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지난 2019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따른 것이다.
이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삼성은 또다시 ‘총수 부재’ 사태를 맞게 됐다. 2018년 2월 이 재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3년 만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 소식이 전해진 삼성은 2017년 총수 부재 상황을 떠올리며 충격에 휩싸였다고 전해진다. 앞으로 이 부회장이 없는 1년 6개월 동안 회사 경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가장 먼저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선언한 ‘뉴삼성’ 비전이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4세 경영권 승계 포기, 무노조 경영 철회, 준법경영 강화, 신사업 추진 등을 골자로 뉴삼성 이행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후 일정 수준 성과도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주문을 받아들여 지난해 1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7개 계열사와 대표들에 대한 감시 기능을 부여해 윤리경영, 준법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파기환송심 최후진술에서 "자신이 꿈꾸는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는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도 거부할 수 있는 촘촘한 준법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달 11일에는 직접 준법위를 찾아 위원회의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해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의 ‘무노조 경영’도 철회하고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지난 14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전자 계열사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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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치는 글로벌 환경에 리더십 부재 삼성전자는 ‘나홀로 침묵’
삼성의 ‘리더십 부재’가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나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이 부회장이 2017년 2월 구속되고 이듬해 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기까지 1년간 그룹은 컨트롤타워 없이 표류한 바 있다. 대규모 투자계획과 중대한 의사결정이 미뤄지고 그룹 인사가 연기되는 등 회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부문 1위를 차지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수립했다. 다만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의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팹리스 시장에서는 미국 퀄컴, 대만 미디어텍, 일본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에 밀리고 있다.
그나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SK하이닉스가 인텔 반도체 부문을 10조원 넘게 베팅해 사들이는 등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 모두 1위에 오르겠다는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이 자칫 총수 부재로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증설을 포함한 국내외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나 유망 기업 인수합병 작업을 한동안 중단할 것으로 본다. 리스크까지 떠안으며 결정해야 하는 ‘빅딜’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실제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이 리더십 발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과감한 경영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9조 3000억원을 쏟아 하만을 인수한 이후 조 단위 인수합병(M&A)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