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27일(토)

원산지 속여 방사능 세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5.04.23 17:54   수정 2015.04.24 17:47:14

대만서 283 품목 적발… 일본산을 베트남서 가공 유통도

[에너지경제 유재형 기자]

#. 대형마트에서 주 1회 장을 본다는 주부 A씨는 냉장식품 원산지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과 러시아산 수산물을 기피해왔으나 어묵과 생선까스, 맛살 일부 수산가공 제품에서 러시아 명태가 재료로 사용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 해외 직구를 통해 녹차(말차)를 결제한 대학생 B씨는 외신 보도를 통해 자신이 구매한 제품과 동일한 상품이 방사능 검출 목록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B씨는 골목으로 파고든 수입과자전문점에서도 동일한 제조사의 분말차 제품을 발견했다.        

대만에서 100가지가 넘는 방사능 오염 식품이 원산지가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세탁됐다는 사건 이후 방사능 오염 우려 식품에 국민적 경각심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한국 역시 현행 식품 규제로는 유사한 사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달 25일 대만 정부가 밝힌 수거 품목에는 컵라면, 간장, 분말차와 커피, 과자류 등으로 총 283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후 각국이 식품 수입규제 정책을 점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자칫 일본산 제품을 규제하는 일이 무역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요구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때문에 일본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포장되고, 유통되는지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밥상에 오르고 있다.

한국 역시 상당수 제품이 방사능 우려 가능성을 안고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2015년 4월 16일 이전 1년간 일본산 수입식품 방사능 검사결과에 따르면, 미량이라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품목은 326건에 무게는 3213톤에 달한다.

만일 대만의 사례처럼 원산지를 속여 수입할 경우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식약처에서는 일본산 제품 외 수입식품에 대해서도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1986년 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 이후 관례적으로 행해진 무작위 샘플조사일 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 제도를 통해 걸러진 방사능 식품 반입금지 조치는 단 한건도 없다.

업계관계자는 "일본산 명태는 원산지를 속이지 않는 한 사실상 유통이 어려운 형편이지만 일본산 명태를 베트남에 있는 식품 가공공장으로 보내 연육 상태로 가공해 국내로 반입한다면 원산지 눈속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별다른 검사절차 없이 시중에 유통 가능한 중인 품목은 연육이 쓰이는 맛살류, 어묵, 생선까스 등 다양하다. 만일 해외 가공업체가 원산지를 속여 기재한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국내 수입유통업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제도적 허점이 있다.

또 일본산이 아니더라도 지난 1월 시민단체 발표에서 방사능 물질 검출이 확인된 러시아산 명태를 사용한 제품이 별다른 규제 없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씨제이제일제당, 사조대림·오양, 동원F&B, 대상 등 대표적 가공업체들은 성분표기를 단순 ‘수입산’ 혹은 ‘원양산’으로 명시하고 있어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취득할 수 없는 구조다.

사조대림 꽃맛살 제품의 경우 러시아 수산물에 대한 기피현상 이후 원산지 표기를 ‘러시아산’에서 ‘수입산’으로 교체한 사례도 발견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몇 년 전부터 골목으로 침투해 유통량이 급증한 수입산 과채음료나 맥주, 제과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으나 최근 정부는 일본의 해제조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제품 수입금지 정책을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대만에서는 이번 원사지 조작 사건을 계기로 일본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추가로 방사능 검사 증명서와 산지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제도를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이를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윤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소장은 "이번 대만의 사례가 한국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담당기관이 국민 안전을 우선시 한다기 보다는 국가간 통상 문제나 기업이윤을 우선 고려하는 풍토는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출처가 불분명한 수입식품이 급증하면서 국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는 방사능 피폭 피해자 대다수가 내부피폭(먹는 음식으로 방사능 피폭)에 의한 것이라는 체르노빌 보고서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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