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처 없는 여정(a vagabond voyage), 162×224㎝ 캔버스위에 아크릴, 2014 |
|
▲중용(moderation), 102×150㎝ 캔버스위에 아크릴, 2009 |
뉴질랜드서 작은 존재 자아 발견...2005년 '중용' 역동적 내면 표출
많은 의미로 진화한 캘리그래피...존재의 정체성 담아 '여정' 몰입
아지랑이 마중하러 매화꽃이 진다. 솔솔바람도 졸고 있는 미시(未時). 바다기슭에 그 꽃이 드러누워 무심히 흐르는 구름을 보다 한 줄기 뿌려지는 묵광(墨光)에 놀라 벌떡 일어설 뻔 했다. 그 바람에 자욱한 봄 안개가 춤추듯 허공에 솟구치는데 턱까지 부풀어 가득 차 곧 터질 듯 씨앗 하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짙은 어둠서 솟구친 발아의 참다움 그 법열(法悅)의 찰나에!
◇생명감 넘실대는 순례의 노래
저녁 빛을 품은 하늘엔 구름과 원소 같은 형상이 부유하고 섬광 번쩍이듯 단박에 그려진 수묵서체느낌의 칼리그라프(Calligraph)가 펼쳐진다. 화면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생생한 긴장감이 이들을 조율하고 있다.
|
▲발아(sprout), 53×65.1㎝ 캔버스위에 아크릴, 2013 |
작가는 1997년도 자연주의적 작업을 추구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이주했으나 공교롭게도 그 때부터 3~4년간 붓을 들지 못한 힘겨운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생각들이 뒤범벅이 된 터널"로 기록하는 혼돈의 시기에 뉴질랜드 북쪽 남태평양과 인접한 외부와 단절된 낯선 숲 속에서 한 여름을 혼자 보내게 된다. "헤매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어느 장소에 가니까 웅혼한 폭포와 돌로 이루어진 산과 무성한 야자나무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폴 고갱(Paul Gauguin)이 지냈던 타히티 섬 원시림공간이 이러했을까. 이따금씩 산비둘기 날갯짓이 정적을 깨뜨릴 뿐 고요 했었다"라고 전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던 어느 날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자연풍경을 보는 관점은 유사한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이 스쳐갔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윽한 침묵의 깨달음이 뜨겁게 밀려왔다. 그 순간 어슴푸레 어둠을 뚫고 자연의 생명감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숲을 가로질러 빠져나오는 ‘나’라는 작은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진통 후에 민족이나 국가적인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빛’시리즈를 발표하게 된다. 이 작업은 2004년까지 이어진다.
2005년엔 자유롭고 역동적이며 내면의 강한 상징성의 존재(存在)가 칼리그라프형상으로 표출된 ‘중용’시리즈를 발표, 현지화랑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림왼쪽은 칼리그라프로 ‘자아’의 존재감, 오른쪽 화면은 뉴질랜드 풍경을 담았다. 좌?우가 하나 된 그림은 음양의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있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암울함 속에서 새벽녘 희미한 여명의 빛처럼 희망메시지를 품고 있다.
화백은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전의 ‘빛’과 ‘중용’시리즈 조형세계를 아우르고 나아가 순수정신이 농축된 의식의 집적(集積)을 풀어낸 어우름(hybrid)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특히 칼리그라프도 어려움을 이겨내려 하는 몸동작 혹은 인물의 형상 나아가 비바람에 밀려 해변으로 밀려오는 고목들의 자연현상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다의적(多義的) 상징으로 진화하고 있다. "긴 시간을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본다. 결국 존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내 화업(畵業)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휘어진 모퉁이에서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하지만 ‘나’를 찾아 떠나는 순례를 멈출 수 없듯 신작‘여정’은 그것을 담았다."
"다른 것 아우르는 혼성의 표현이 내 회화세계"
서울 인사동서 화백을 만났다. 2년 전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화실서 보았을 때 보다 집중력이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땐 뭐랄까, 시간의 간극이 주는 두리번거림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소재 미리내예술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오는 4월15~28일까지 갖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백송화랑 초대전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칼리그라프와 관련한 어릴 적 기억을 술회했다. "할아버지 방(房)에 둘러쳐진 서예병풍은 어두침침한 공간에 서 있었는데 어느 날 서예글씨가 꿈틀거리듯 움직이면서 방안을 부유하는 듯 한 착각에 빠졌었다. 우연인지 내가 뉴질랜드에 막 이주했을 때 전혀 다른 환경에서 부딪혔던 자아에 대한 고뇌의 늪에서 그 기억이 떠올랐다. 물에 빠졌다 뭍으로 나온 환희처럼 ‘나’를 확인케 한 코드가 바로 할아버지 방의 수묵서체였다"라고 밝혔다. 그때 작업이 ‘중용’시리즈인데 서체적형상성인 칼리그라프(Calligraph)를 화면에 구현하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15년 동안 작업하면서 기장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맞부딪힌 명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고 했다. 자연도 한국적 풍경과 뉴질랜드 것이 ‘나’라는 존재에서 양립했는데 그것이 함의되어 있는 대표성이 칼리그라프라는 것이다.
화백은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한글과 영어 등 문자와 역사를 비롯하여 적어도 한 사람이 지나온 발자취나 보편적 가치관을 ‘다름’으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날 하이브리드(hybrid)로 회자되는 이 ‘혼성(混成)의 드러냄’이 나의 회화세계"라고 했다.
서양화가 양규준(Gyu-Joon Yang)작가는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원과 화이트클리프 미술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해하면서 작품세계를 심화시켰고 ‘중용’시리즈를 발표한 2005년 이후 뉴질랜드 리딩 갤러리 중 한곳인 화이트스페이스(whitespace)소속작가로 현재까지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 오고 있다. Auckland City, James Wallace Art Center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목화랑, 현대아트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11회 가졌다.
권동철 문화전문위원 kd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