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세동 '위험' 연간 11만명 이상 신규환자 발생
대한부정맥학회 '2024 팩트시트·진료지침' 발표
“심전도 검사, 국가건강검진 항목 도입 서둘러야"
지역 불균형 해소·항부정맥 약물 적극 처방 중요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의 심뇌혈관센터에서 부정맥 환자가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박효순 기자
5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음주 후나 과로 시 심장박동이 약간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는 불규칙한 증상으로 2∼3년간 말 못할 고민 속에 살아왔다. 증상은 반나절에서 길게는 1∼2일 지속되기도 한다. 가만히 맥을 짚어보면 박동이 약해졌다 강해졌다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
긴장할 때, 어떤 때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이 있어 “이러다 심장이 멎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생겼다. 증상이 점점 나빠져 최근 병원을 찾은 이씨는 기본 심전도 검사와 홀터 검사(24시간 심전도) 결과 부정맥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정상 성인의 심장은 1분에 70번 내외로 박동하며 하루 약 10만회, 1년 약 3650만회, 80년 동안 약 30억회 박동한다. 매우 규칙적으로 단 한 번도 쉬지 않는다. 심장이 멎으면 곧 죽음이다.
심장은 자체에서 나오는 전기신호에 의해 박동하는데, 전기 전달 체계에 변화나 이상으로 심장의 정상 리듬이 깨진 상태를 부정맥이라고 한다. 심장박동이 빨라도, 느려도, 불규칙해도 '부정맥 의심' 신호다. 1분에 60회 미만으로 심장이 뛰는 서맥성 부정맥, 100회 이상으로 심장이 뛰는 빈맥성 부정맥, 맥박이 불규칙적으로 아주 빠르게 뛰는 심방세동 등 3가지로 크게 구분한다. 서맥과 빈맥이 함께 나타나는 빈맥서맥 증후군도 있다.

▲부정맥의 다양한 종류와 주요 증상들. 출처=대한부정맥학회 '2024 심방세동 팩트시트'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대표적인 것이 '심방세동'이다. 심방이 '파르르' 떨리기 때문에 심장혈관(관상동맥)이나 경동맥(목에서 뇌로 연결되는 혈관) 등에 붙어 있던 피떡(혈전)이 떨어져 나갈 위험이 높다. 혈전은 돌아다니다가 심장이나 뇌의 혈관을 막아 협심증·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같은 심뇌혈관질환을 유발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통계를 보면, 국내 부정맥 환자는 2019년 39만 8497명에서 매년 증가해 2013년에는 48만 6956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심방세동 유병률 증가에 따라 조기 진단을 통한 예방적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특히 심방세동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심전도 검사의 국가건강검진 항목 도입과 보건지소에도 심전도 검사장비를 확대 운용하는 필요성은 주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위험한 부정맥 1순위 '심방세동', 연 11만명 이상 신규환자 발생
대한부정맥학회(KHRS)는 지난 20∼22일 열린 제17회 대한부정맥학회 정기국제학술대회(KHRS 2025) 첫날인 20일 의학기자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심방세동 현황과 향후 치료 전략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며 이런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학회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2024 심방세동 팩트시트'와 새로운 진료지침을 공개했다. 픽트시트에는 국내 심방세동의 유병률이 2배 이상 증가했고, 특히 고령 인구에서 유병률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은선 홍보이사(강동걍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의 사회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오세일 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은 “부정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은 의료진은 물론 환자나 일반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며 “각고의 노력 끝에 집대성한 팩트시트와 진료지침을 통해 의료가 더 발전하고 국민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의근 대한부정맥학회 학술이사가 '2024 심방세동 팩트시트'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효순 기자
첫 번째 발표에 나선 최의근 학술이사(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013년 1.1%였던 국내 심방세동 유병률이 2022년 2.2%로 두 배로 증가했으며, 8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13%, 60세 이상에서는 5.7%에 달한다"면서 “2022년 새롭게 심방세동으로 진단된 환자는 약 11만 5000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에서의 유병률은 10년간 2.3배로 증가했으며 이 같은 수치는 고령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심방세동이 점차 주요 심혈관계 질환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2022년 기준 심방세동 환자의 평균 연령은 70.3세로 확인됐다. 고혈압, 당뇨병, 심부전 등의 만성질환 동반율 또한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뇌졸중 위험도를 평가하는 점수는 평균 3.6점으로, 뇌졸중 예방이 필요한 2점 이상 환자 비율이 83%에 달했다. 대부분의 환자에게 항응고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방세동 치료에서 리듬 조절 전략의 핵심인 항부정맥제 처방률은 2022년 기준 16.4%로, 10년 전 12% 대비 증가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 교수는 “심방세동은 뇌졸중, 심부전, 인지기능 저하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조기 발견 및 적극적인 치료 전략이 필수"라며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심방세동 선별 검사(심전도 검시)를 포함시켜 조기 진단율을 높이고, 지역별 불균형 해소 및 리듬 조절 치료 전략 강화를 위한 보건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악성 심방세동, 심부전·심장마비 유발…금연 필수, 술·카페인 줄여야
부정맥학회는 부정맥 유병률 증가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진료표준화를 위해 심방세동, 상심실성 빈맥, 실신 등 7개 부정맥 분야의 약물·시술치료 등을 포괄하는 진료지침을 최근 발간했다. 2023년부터 1년 이상에 걸쳐 국내 부정맥 전문가 80여 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성정훈 진료지침이사(분당차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두 번째 발표에서 “이번 진료지침은 단순한 참고서가 아니라, 최신 임상 근거를 기반으로 진단·치료·추적관찰 전 과정을 포괄하는 실용적인 임상 가이드라인"이라며 “심장 전문의는 물론, 일차 진료 현장에서 부정맥 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정훈 대한부정맥학회 진료지침이사가 심방세동의 진료표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효순 기자
심장에 부정맥이 발생하면 혈액이 뇌에 들쭉날쭉 공급되면서 어지럼증, 현기증 등이 나타난다. 세포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호흡곤란이 생기기도 한다. 심장이 바르르 떠는 악성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부전이나 심장마비(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
부정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연은 필수다.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술이나 카페인 음료 섭취를 줄이는 것 또한 기본이다. 무리한 운동은 피하고, 걷기나 계단 오르기 등 규칙적인 운동을 가볍게,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부정맥 유발 원인은 심장질환, 폐질환, 자율신경계 이상, 약물, 전해질 이상 등 다양하다. 운동, 커피(카페인), 흡연(니코틴), 흥분상태, 술(알코올) 등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부정맥은 일정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정 시간이나 외부 자극 등 경우에 따라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부정맥 증상이 뚜렷하거나 의심될 때는 우선 심전도 검사를 시행해 1차적으로 진단을 한다. 그러나 심전도 검사를 통해 부정맥 진단이 어려운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24시간 계속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기를 가슴에 차고 다닌 후 그 결과를 토대로 정밀 분석을 하게 된다.
또 전기생리학 검사는 사타구니에 있는 큰 정맥을 통해 전극선을 넣어 심장의 전기신호를 관찰하는 전기생리학 검사를 받으면 부정맥의 원인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외에도 환자 상태에 따라 심초음파 검사,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 등을 적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