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원전 정책 이후 두산중공업의 몰락을 바라보는 심정은 마치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땅에 도달할 때까지 속절없이 층수를 세는 것과 같다.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매출 10조원이 증발했는데 버틸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 아래서 기업은 망해도 할 말을 못한다. 지난해 1월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은 대통령에게 창원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신한울3·4호기 건설 재개를 요청한 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나기용 두중 부사장이 ‘많이 어렵다’고 한 것은 사실상 비명이다. 노조마저도 누구 눈치를 보는지 움직이지 않다가 집행부가 교체되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지만 이미 늦은 듯하다.
두산중공업의 공장가동률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2017년 주당 2만2000원이던 주가는 4700원으로 4분의 1토막으로 곤두박질쳤다.미래가 없다는 얘기다.원전을 수출한 2010년에는 8만원을 넘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400명에 대해 순환휴직을 강행했고 임원의 20%를 감원했다. 26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추진했지만 신청자가 적어 강제퇴직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두산중공업의 전신은 한국중공업이다.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기치로 1960∼1970년대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여 한국중공업을 탄생시켰다. 원전산업 국산화 정책에 따라 각종 연구개발지원을 통해서 오늘의 기술력을 쌓았다.품질보증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에 시작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1만7000톤의 단조프레스와 세계 최대 규모의 터빈공장을 갖추고 원자력발전소 주기기를 척척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용 로터샤프트, 원자력여자시스템 등 원자력 분야에서만 4개의 세계일류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선도기업으로서 해외에 의존하던 원자로냉각재펌프, 원전계측제어설비를 협력업체와 함께 국산화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중소기업과 기술력을 나누고 일감을 나누면서 동반성장했다.
해외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미국의 신규원전인 보글3·4호기 등에 원전 주기기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해 세코야1·2호기 및 와츠바1·2호기 증기발생기 등 수천억 원대의 교체품도 꾸준히 수주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캐나다 원자력공사가 중국에 수출한 원전의 주기기도 모두 두산중공업에서 공급했다.실로 세계적인 ‘공장’이 됐다. 최근에도 러시아 원전 부품을 수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2009년 UAE 원전수출 이후에는 원자로냉각재펌프와 원전계측제어설비 기술을 국산화했다. 원전의 주요부품을 모두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돼 수출경쟁력을 확보했다.
신한울3·4호기 중단은 주기기에 사전투입한 4950억원이 물려있는 두산중공업만의 몰락이 아니다.원전분야 800여 기업을 위시한 총 2600여개의 협력업체의 동반 몰락이다. 세계가 공인한 원전 기술경쟁력을 갖췄지만 잘못된 정책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적자에 대해서는 탈원전 영향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에 대해서는 탈원전 정책의 영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6기의 신규 원전건설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8조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성능개선사업백지화에 따른 손실도 2조원에 달한다.
혹자는 두산중공업이 세계시장의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국내에만 의존한 결과라거나 자회사인 두산건설을 지원한 것을 탓한다. 그런데 탄탄한 국내시장을 두고 다른 시장을 나갈 이유는 없다. 탈원전·탈석탄은 세계적 트렌트가 아니라 날벼락이다.두산건설에 지원한 것은 재무건전성을 나쁘게 했지만 주된 요인은 아니다.
두산중공업을 잃으면 다시는 이런 ‘공장’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설령 만든다고 해도 생태계가 굴러갈 수 있도록 전방과 후방의 협력업체까지 만들 수 없다.
두산중공업은 한 기업을 넘어 국가의 자산이다.이제라도 살려야 한다. 근본처방 없이 1조원의 긴급수혈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처방은 신한울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두산중공업은 2조5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1조원은 560여 협력업체로 흘러간다. 그렇게라도 숨은 붙여놔야 한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