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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한국바이오협회 회장) |
[에너지경제신문=김민지 기자] 정부가 최근 마크로젠이 신청한 소비자직접의뢰(DTC·Direct to Consumer) 유전체 분석 서비스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으로 승인했지만,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바이오 업계에서 "특정 기업에만 특혜를 허용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DCT 유전자 검사 기업 5곳이 규제 샌드박스에 도전장을 냈으나, 마크로젠만 선정됐다. 마크로젠은 유전자 분석업체로, 유전체 업체 분석 서비스 분야에서 국내 1위다. 마크로젠을 이끌고 있는 서 회장은 바이오 벤처 1세대로 한국바이오협회를 이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유전자 분석과 관련된 산업계 전체가 아닌 특정 기업에만 실증 특례를 허용했다"면서 "이번 DTC 규제 샌드박스 결정은 업계 전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에서 마크로젠이 실증특례를 신청한 DTC 유전자검사를 허용했다. DTC 유전자검사란 소비자가 민간업체에 직접 의뢰하는 유전자 검사다. 의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기업에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질병 가능성과 유전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그동안 바이오 업계에서는 수차례 DTC 유전자검사 항목 확대를 요구해왔다. 현재 검사 항목이 12개로 한정돼 있고 암 등의 질환은 검사할 수 없다. 정부도 DTC 검사 항목을 121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거치면서 이 안은 폐기됐다. 병원이 아닌 DTC로 질병을 예측하는 게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그러나 마크로젠의 실증특례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앞으로 유전자검사 업체들은 위암을 포함한 5대 암과 고혈압, 2형당뇨병 등 13종의 질환에 대해서도 위험도를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서비스제공 예정 질환 13개는 만성질환 6개(관상동맥질환, 심방세동, 고혈압, 2형당뇨병, 뇌졸중, 골관절염), 호발암 5개(전립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노인성질환 2개(황반변성, 파킨슨병)다.
당초 마크로젠은 15개 질환에 대한 실증을 신청했으나, 유전인자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유방암과 현재까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치매는 결과 활용도 등을 고려해 서비스 항목에서 제외했다.
특히 이번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에 DTC 유전자검사가 선정된 것은 서 회장이 공을 들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인 서 회장은 바이오 업계 규제 완화를 위해 그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지난 2009년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뒤 2013~2014년을 제외하고 줄곧 회장직을 유지해왔다.
서 회장은 지난 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 7인의 혁신벤처인으로 초청됐다. 서 회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제는 속도감 있는 규제완화를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다"라고 산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로 서 회장은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국내 19개 유전체 분석업체들은 지난 2015년 7월 출범한 바이오협회 산하 유전체기업협의회 회원사로 참여, 보건복지부와 DTC 검사대상 대폭 확대를 논의해왔다. 복지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마크로젠이 산업통상자원부라는 다른 루트를 통해 독자적인 방식을 취했다며 실망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가 도리어 업계에 갈등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서 회장은 억울한 측면도 있다. 그동안 복지부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했지만 제자리 걸음만 할 뿐 일이 제대로로 진척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산업부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결과가 특정 업체에만 몰아주기식이 됐다"면서 "앞으로 개별 기업 위주가 아닌 산업계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런 논란은 ‘성장통’이다. 모든 기업이 수혜를 보는 종착역까지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컨트롤 가능한 잡음’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는 마음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