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 안정적 확보와 에너지 수급 안정화 기조였다. 에너지 안정적 확보 측면에서는 석유에 대한 대책(수입선 다변화, 해외자원개발)과 석유 이외의 대체에너지(원자력,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이슈들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환경친화적 에너지 수급구조와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 등에 관한 과제들이 활발히 논의, 추진되고 있다.
◇ 광복 이후∼군사정권 "에너지 안정적 공급을 통한 경제발전·민생 향상"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이승만 정부 시절이던 1948년 상공부 설립에서 시작됐다. 당시 상공부는 수산업과 광업 등 1차 산업에서부터 공업, 상업에 이르기까지 실물경제를 총괄했다. 이 당시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나라 연료의 대부분은 신탄이었다. 에너지원은 소달구지의 축력, 풍력, 수력이 전부였다. 전쟁 당시부터 1960년까지 신탄과 무연탄이 전체 에너지의 90%를 차지했으며 석유는 9.8%에 불과했다. 한전 통계자료를 보면 1956년 국내 에너지 소비량은 8756TOE(TOE=석유환산톤)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숯이나 신탄이 6475TOE로 전체 소비량의 74%를 차지했다. 석탄이 1634TOE로 18.6%를 차지해 전체의 92.6%가 신탄과 석탄이었다. 당시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도 있었는데 518TOE에 불과했다. 수력이 129TO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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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전기백년사 |
이즈음 신에너지였던 원자력 도입도 시작됐다. 한국 원자력의 역사는 1958년 미국 디트로이트 에디슨사(社)의 회장 워커 리 시슬러 박사의 방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슬러 박사는 2차 대전 후 유럽의 전력망 복구에 기여한 인물이다. 전쟁 이후 전력 부족으로 고심하던 이승만 정권에게 시슬러 박사는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고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다. 자원이 전무한 한국은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한 이승만은 원자폭탄 두 방에 일제가 미국에 항복하는 것을 지켜보며 "앞으로 국방·안보적 차원에서도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대통령은 1959년 원자력연구소 설립하고 273명의 학생을 미국과 유럽으로 보냈다. 한 명당 유학비로 6000달러 이상이 들었다.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0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국가적으로 사활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석유 등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경제발전이 어렵다고 판단,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면서 석유 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 정책 등을 통해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이뤄지도록 본격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도 에너지 공급체계에 있어 석유가 중심이었다. 정부는 1970년 1월 1일 기존의 ‘대한석유공사법’과 ‘석유운영규정’ 등 각종 석유관련 제도를 종합적으로 정비해 ‘석유사업법’을 제정·공포했다. 석유사업법은 석유 전반의 제도를 정비하면서 석유의 안정되고 저렴한 공급을 확보하고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1970년대에는 중동발 제 1·2차 석유파동이 일면서 원유 안정적 확보와 석유비축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당시 정부는 1975년과 1977년 석유사업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석유수급 계획의 효율적 실시와 원유의 확보 등을 위한 사업 조정, 정부의 수급통제 기능 등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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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파동으로 인해 용산구에서 피켓을 들고 에너지를 아껴쓰자는 가두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출처=오픈아카이브] |
동시에 1962년 연구용 원자로 건립을 시작으로 원전 기술도 본격적으로 키워나갔다. 우리나라의 본격적 원자 핵 개발 노력은 고리 1호기 도입이 추진되던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핵확산 금지에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전원으로서의 원전에 무게를 뒀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기술은 첫 번째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 가동(1978),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2009)에 이르기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지금은 전 세계적 5위권으로 명실상부한 원자력 강국이 됐다. 2차 대전 후 신생독립국 중 원자력 기술 자립은 물론 해외수출까지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고리 1호기의 설립과 준공, 가동이 이뤄진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중화학 공업, 수출용 기자재 조달, 농촌 기계화 등으로 전력수요는 연평균 15% 증가했다.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9.2%로 국내 총생산(GDP)은 1962년 82달러에서 1979년 1747달러로 21.3배 성장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에는 국제석유파동 이후 석유 이외의 다른 에너지원을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유가 안정에 따라 원유 수입 관세율을 인상하는 등 국제정세에 반응해 탈석유 전원개발계획, 유연탄 확대 사용방안, 석탄산업 근대화 계획, 원자력발전소 제9호기와 제10호기 착공, 평택화력발전소 3·4호기 준공, 석유사업기금제도를 도입했다.
◇군사정권 이후 "국내외적 변수에 따라 에너지 정책 변화"
대부분 정책이 그렇듯이 에너지·기후정책 역시 당시의 국내외적 상황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군사정권시대 이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른 구조조정 압박, 국제유가 변동, 기후변화협약, 산업구조와 에너지 수급구조 변화, 시민사회의 성장과 에너지 거버넌스의 진전 등 국내외적 변수에 따라 에너지 정책도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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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김영삼 정권까지는 기존정책의 유지와 에너지 수요변화에 따른 석탄산업 합리화가 등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까지는 IMF체제 속에서 이뤄진 에너지 산업과 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명박 정권은 에너지·기후분야의 비중이 역대 정권보다 매우 높았다. 친환경 경제·에너지 구조를 제시해 에너지·기후변화 이슈를 경제와 결합시키는 변화가 특징이다. 노태우 후보는 1987년 대선 당시 슬로건으로 "보통사람의 시대, 이제는 안정입니다"를 제시했다. 에너지·기후 분야 국정과제로 △에너지절약 △에너지요금 △해외의존자원확보 △국내 부존자원개발 △원자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제시했다.
1993년 김영삼 당선인은 "신한국 창조, 한국병 치유"를 주요 슬로건으로 77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이중 에너지·기후 분야 공약은 △전력공급시설 차질 없이 확충 △도서·벽지 전기혜택 △천연가스의 전국 공급망 구축 △탄광지역 진흥사업 적극 추진 △에너지 절약시책 적극 추진 등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정부기구를 축소하고, 규제완화를 제도화했으며, 경쟁·개방화를 촉진했는데, 에너지·기후 분야에서는 동력자원부를 상공자원부로 개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1997년 김대중 후보는 에너지·기후 분야 공약으로 △산업구조조정특별위원회 설치 △기후변화협약에 대응 △환경산업을 미래전략수출산업으로 육성 △대기환경기준 강화 △환경외교 강화 등을 내걸었다. 한편 김대중 정부 초기 에너지·기후 분야 법안은 대부분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구조조정과 관련된 사안들이었다. 또한 서해안 석유탐사, 방사성폐기물 관리부지 선정 등의 논의가 시작된 시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에너지·기후 분야 국정과제로 △정부조직개편 △주민투표제 △동북아 에너지 협력기구 설치 △해외 자원개발 △수도권대기질 개선 특별대책 △전략환경평가제도 도입 △공기업 구조개혁 △에너지산업구조개편(가스, 전력)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후보부지 선정·발표 △교통세 유지 △환경세 도입 △지속가능한 에너지 관리(수요관리) 등을 내세웠다. 특히 전기사업 진입규제 완화와 전력산업의 경쟁을 촉진 등 전력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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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이후 "환경·기후, 에너지효율 강조"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정책 목표에서 우선순위는 에너지원의 안정적 확보와 에너지 수급 안정화에 있었다. 다만 이후부터 지구온난화, 환경, 기후변화 등의 이슈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며 에너지정책도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전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계승·확대하고, 산업과 연계한 정책으로 에너지·기후 분야를 국정 핵심과제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에너지·기후분야 국정과제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육성 △신성장동력발굴 △에너지 절약과 자원 확보 △온실가스 저감 △환경산업 수출전략산업화 △교통세 10% 인하 △푸른 한반도(Green Korea) 만들기 △지구온난화 대처를 위한 온실가스 저감 △공기업 민영화와 경영 효율화 동시 추진 등이었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에너지·기후분야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인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이전 정부의 녹색성장 기조를 유지·보완한 수준이었다. 특별한 에너지 정책이 없었던 셈이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에너지·기후분야 공약은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 △신재생에너지 보급제도 혁신과 에너지 수요관리 확대 △자원·에너지의 낭비를 줄여 자원순환사회 실현 △동북아 에너지그리드를 구축해 에너지공급 안정화 기반 마련 △에너지 빈곤 없는 따듯한 에너지복지 실현 △기후변화 시대에 적극 대처하고 지구환경문제 해결 선도 △남북 환경공동체 구현 등 7개 분야, 16대 약속, 10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 문재인 정부 "친환경·안정성 최우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친환경·안정성이 에너지·기후분야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탈(脫)원전과 에너지전환으로 정리된다. 이를 위해 △지역분산형 에너지체계 △에너지복지 △기후변화대응 △에너지 민주주의가 골자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과 기후변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이용의 확대를 통해 지역분산형 에너지체제로 전환해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의 공정한 배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최근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인 만큼 전 국민 의견수렴을 통한 정책적 추진 동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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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의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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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에너지 공약. |
◇ [전문가 기고]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 "문 정부 들어 획기적 에너지 정책 변화"
기후변화, 지역에너지, 에너지 정부조직 등 현재적 주요 에너지정책은 과거 정권의 공약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의 안정공급이라는 박정희 정부 이후 이어져 온 기본적 정책프레임에 예속된 결과로 판단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에너지·기후정책은 한 축으로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수입선 다변화정책, 비축유정책, 해외자원개발정책 등을 추진하고 다른 축으로는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중앙 집중형 전력수급정책을 고수해 왔다. 몇 가지 세부적 정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의 에너지·기후정책은 같은 기조 하에 유지·강화돼 왔다고 볼 수 있다.
13대 노태우 당선인의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부터 17대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까지 시기별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공약과 인수위 국정과제를 검토한 결과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석유·가스 수급과 에너지 절약에 대한 내용이 빈도수가 가장 높았다. 석유에 대한 대체 에너지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한반도의 평화와 직결돼 있는 북한 에너지 빈곤에 대한 협력과 에너지 복지 관련 사항이 미비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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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 |
즉 과거 인수위에서는 에너지·기후변화 이슈들을 주변부 문제로 바라보거나 근본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공급량 확보 등 공급 위주정책에다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다. 경제성장 정책을 우선에 둠에 따라 환경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양상이었다.
또한 대통령제 체제에서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대통령 의지, 혹은 핵심 슬로건에 따른 구속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를 주창한 김영삼 정부의 동력자원부 해체, 국민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 참여정부의 주민투표, 이명박 정권의 환경산업의 수출전략산업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관료·지식자본 카르텔에 포섭돼 에너지기후정책의 변동은 정권교체의 영향이 적다. 한편 정권교체였는지, 정권연장이었는지에 따라 이전 정권과의 정책단절, 혹은 전 정권 정책의 연장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교훈과 석유정점에 따른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탈핵과 지역에너지체계를 중심기조로 하는 동시에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또한 탈핵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을 취약계층에 전가해서는 안 되며, 그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함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방폐장과 신규원전 부지 선정, 건설 철회 과정에서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은 에너지정책의 민주적 시민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