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CI. 사진=박규빈 기자
올해로 창업 130주년을 맞은 ㈜두산이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을 전격 인수하며 그룹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마침표를 찍었다. 과거 전통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인공 지능(AI)과 첨단 반도체 소재 기업으로 도약하는 근본적인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평가다.
㈜두산은 31일 이사회를 열고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를 2조3000억 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최종 매매 대금은 향후 조정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 이번 인수는 2007년 두산밥캣 인수로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했던 이른바 '첫 번째 전환' 이후 19년 만에 성사된 최대 규모의 '두 번째 전환'으로 꼽힌다.
◇ 1983년 설립 '알짜' 소재사…반도체 전방위 수직 계열화 달성
1983년 설립된 SK실트론은 반도체 전공정(Front-End)의 핵심 토대인 실리콘(Si) 웨이퍼를 제조하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 약 2조 원, 영업이익 4000억 원을 상회하는 견고한 실적을 기록했다.
웨이퍼는 반도체 칩 생산의 전체 수율을 좌우하는 고부가 소재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돼 신규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실제 글로벌 시장은 SK실트론·신에츠화학·섬코·글로벌웨이퍼스·실트로닉을 포함한 5개사 점유율이 90%를 상회하고, SK실트론은 주력인 300mm(12인치) 웨이퍼 시장에서 글로벌 톱3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두산의 이번 인수가 시장의 주목을 받는 핵심 이유는 반도체 제조 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의 완성에 있다. ㈜두산은 그동안 전자BG 부문을 통해 AI 가속기용 동박적층판(CCL) 등 하이엔드 기판 소재를 공급해왔고 2022년에는 두산테스나를 인수하며 후공정(Back-End) 테스트 사업에 진출했다. 여기에 전공정의 출발점인 웨이퍼 제조 역량까지 확보하면서 '웨이퍼(소재)→동박적층판(기판)→테스트(후공정)'로 이어지는 반도체 밸류 체인을 구축하게 됐다.
업계는 두산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를 상대로 '패키지 딜' 형태의 사업 제안이 가능해져 가격 협상력과 영업력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박정원 회장의 뚝심…에너지·로봇·반도체 아우르는 'AI 인프라' 완성
이번 빅딜의 이면에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강력한 'AI 전환(AX)'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2020년 채권단 관리 체제라는 위기 속에서도 미래 사업의 방향성을 잃지 않았던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 기반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운명은 완전히 갈릴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SK실트론 인수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소형 모듈 원전(SMR)·가스 터빈(전력) △두산로보틱스 공정 자동화(스마트 머신) △두산 전자BG-실트론 첨단 소재(반도체) 결합 'AI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하게 됐다. 그룹 내 독보적 성과를 내고 있는 전자BG와 연 매출 2조 원 규모의 실트론이 시너지를 낼 경우 반도체 부문은 그룹의 이익 체력을 주도하는 제3의 핵심 축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 美 적자 법인 청산으로 수익성 '극대화'…비상장 유지로 주주 달랜다
인수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제거한 점도 눈에 띈다. 양사는 올 1분기에만 541억 원의 적자를 낸 미국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 법인 'SK실트론CSS'를 청산하기로 합의했다. 성장성이 불투명한 적자 사업을 과감히 떼어내고 구조적으로 높은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을 내는 300mm 실리콘 웨이퍼 본업의 가치만 온전히 흡수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또한 ㈜두산은 사업형 지주회사로서 자체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함과 동시에 SK실트론을 상장(IPO)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했다. 자회사 상장으로 인한 모회사 디스카운트를 원천 차단하고 실트론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배당 재원을 확보해 ㈜두산의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이다.
◇ 2031년 매출 3조 원 목표…대규모 투자·하이닉스 물량 유지는 숙제
두산은 AI 투자 확대에 따라 2032년까지 웨이퍼 수요가 연평균 7%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5년 내외의 장기 공급 계약 특성을 활용해 점진적인 단가 상승을 도모하고, 2031년까지 실트론의 매출을 3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궁극적으로는 메모리 웨이퍼 시장에서 글로벌 톱2에 진입하고 일본 기업들이 독점 중인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장밋빛 미래를 위해 넘어야 할 허들도 존재한다. 우선 최대 주주 변경 이후에도 기존 SK실트론 전체 웨이퍼 매출의 약 50%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사인 SK하이닉스와의 거래 관계를 얼마나 굳건히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아울러 신규 증설 시 조 단위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자본 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두산그룹 차원의 효율적인 재무 관리와 투자금 조달 능력도 향후 성공의 핵심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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