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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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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의 부동산현장] 제2의 성수동 꿈꾸는 문래동…개발 핵심 ‘철공소 이전’ 표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6.10 09:13

통이전 필요성엔 공감대…부지 확보·법적 근거 마련은 3년째 제자리
수도권 이전부지 못 찾고 산단 협의도 없어…통이전 논의는 답보
영등포구 “후보지 검토 중” 국토부 “공식 협의 없어”…철공소만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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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내 한 철공소 부지가 철거된 채 방치돼 있다.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제조업체들이 떠난 자리에 재개발과 업종 전환이 이어지면서 문래동 제조업 생태계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뿌리산업 집적지인 서울 문래동 철공단지가 임대료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 여파로 매년 5% 이상의 소공인이 이탈하며 수십 년간 축적된 협업 생태계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소공인 단체는 국가 첨단산업 공급망 타격을 막기 위해 정부에 '집단 통이전'을 건의했지만, 대체 부지 확보 규제와 지자체 간 협의 난항으로 3년째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9일 에너지경제신문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현장을 직접 찾았다. 문래동2가 골목에 들어서자 쇠를 깎는 선반 소리와 카페 음악이 뒤섞여 들렸다. 낡은 철공소 문 앞에는 철판과 금속 부품이 쌓여 있었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브런치 카페와 수제맥주집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수십 년 된 기계가 돌아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 풍경이다. '힙한 동네'로 불리는 문래동의 현재 모습이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공장을 지켜온 소공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는 서울에 남은 대표적인 도심 제조업 밀집지다. 절삭, 선반, 용접, 금형, 열처리, 도금, 조립 등 금속 가공에 필요한 공정이 한 골목 안에서 맞물려 돌아간다. 작은 부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업체가 일을 넘기고 받는 구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철공소를 운영해 왔다는 한 철공업체 대표는 문래동의 경쟁력을 '거리'가 아닌 '연결'에서 찾았다.


그는 “금속 부품 하나를 만들려면 단순히 깎는 작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먼저 소재를 구하고 선반이나 밀링으로 형태를 잡은 뒤 열처리와 도금, 용접, 연마 같은 후속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래동에서는 이 과정이 골목 안에서 바로 이어진다. 여기서 깎고, 옆집에서 열처리하고, 다른 집에서 마무리해 다시 가져오는 식"이라며 “문래동은 공장 몇 개가 모인 곳이 아니라 하나의 생산라인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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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전경. 철공소와 금속가공업체가 밀집한 공장 지붕 사이로 루프톱 카페와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제조업 공간이 문화·상업 공간으로 대체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여기서 깎고 옆집서 열처리"... 걸어서 5분, 문래동의 원스톱 생산망

최근 3~4년 사이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코로나19 이후 홍대와 성수동 등지에서 밀려난 카페와 음식점이 문래동 골목으로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치솟기 시작했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화장품 케이스 금형을 만든다는 20년 경력의 한 철공소 대표는 문래동 철공단지의 남은 시간을 “1년도 채 안 남은 시한부"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50만원을 내던 자리에 젊은 사람들이 100만원을 주겠다고 하면 건물주가 누구를 택하겠느냐"며 “일감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오르니 결국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차고 있다"며 “문래동이 제2의 성수동이 될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철공단지의 모습은 과거 사진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골목 곳곳에서는 철공소가 빠져나간 자리에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있었다. 일부 건물은 철공소 간판을 내린 채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제조업체가 빠져나간 자리를 상권이 채우면서 문래동은 빠르게 소비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소공인들은 이 변화가 단순한 상권 재편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공소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문래동 전체의 생산망이 함께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래동의 경쟁력은 집적 효과에 있다. 소재를 구하고 금속을 깎고 열처리와 도금, 도장을 거쳐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이 가까운 거리 안에서 이뤄진다. 지금은 걸어서 5분이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업체들이 시흥·안산·화성·인천 등으로 흩어지면 생산비와 물류비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소공인협회 관계자는 “소재는 시흥에서 구하고 열처리는 안산에 가서 하고 도장은 다른 지역에서 해야 한다면 지금 같은 납기를 맞출 수 없다"며 “문래동의 경쟁력은 한곳에 모여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협업 구조가 단순히 동네 철공소 수준이 아니라 국가 제조업 공급망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문래동에서 생산된 부품과 시제품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반도체, 로봇, 드론, 방산, 전기차 등 첨단산업 분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서울소공인협회 관계자는 “삼성이나 한화에 직접 납품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여러 협력사를 거쳐 최종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든다"며 “첨단산업도 결국 금속 부품과 기계 부품 위에서 돌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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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골목. 낮은 철공소와 공장 건물 뒤로 신축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서며 문래동 일대의 도시 경관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공인들은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제조업 기반이 위축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사진=장혜원 기자

카페 골목에 밀려난 뿌리산업... 임대료 폭등과 고령화에 이탈 가속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업주 상당수는 60~70대였다. 이들에게 이전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라 폐업과 맞닿아 있다.


42년째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70대 철공업체 대표는 “이 나이에 공장을 통째로 옮기고 거래처를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며 “갈 곳이 없으면 정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기술자 유입도 사실상 끊겼다. 일감은 줄고 임대료는 오르는 상황에서 장기간 기술을 배워 제조업에 뛰어들려는 청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세대가 은퇴하면 기술도 같이 사라질 수 있다"며 “카페 거리는 언제든 만들 수 있지만 40~50년 동안 쌓인 제조업 생태계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만들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소공인 단체들은 개별 이전이 아닌 집단 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체들이 뿔뿔이 흩어질 경우 문래동의 핵심 경쟁력인 협업 체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소공인협회는 이미 정부에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의 집단 이전 필요성을 공식 건의했다.


본지가 확보한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통 이전 추진 건의서'에 따르면 서울소공인협회는 2024년 6월 국토교통부에 국가 차원의 통이전 지원과 제도 마련을 요청했다.


협회는 건의서에서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를 “1960년대부터 형성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뿌리산업 집적지"라고 규정했다. 현재 1260여 개 업체와 3500여 명의 종사자가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연간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또 임대료가 매년 10% 이상 상승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면서 매년 5% 이상의 소공인들이 공장을 떠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건의서에는 “주조·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용접 등이 결합된 뿌리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며 “문래동 문제는 단순한 지역 상권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반기술과 첨단산업 경쟁력의 문제"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같은 해 민원 회신을 통해 “영등포구가 이미 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며 “향후 영등포구가 산업단지 조성 등에 대한 협의를 요청하는 경우 성실히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건의서 제출 이후 3년이 넘도록 실제 산업단지 지정 협의나 이전 부지 확정 등 가시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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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골목. 철공소와 금속가공업체가 밀집한 거리 한편으로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며 제조업과 상업시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과 임대료 상승으로 문래동 철공업체들의 집단 이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3년째 표류하는 '집단 통이전'... 그린벨트 규제와 부지 확보 난항

영등포구는 문래동 기계금속단지 통이전과 관련해 적합 부지를 계속 검토 중이지만 현재 확정된 후보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2024년 초 관련 기본용역을 마친 뒤 소공인들이 희망하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이전 후보지를 검토해 왔다"며 “김포·시흥·안산 등 수도권 내 여러 지역과 접촉했지만 필요한 면적을 충족하는 부지는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이나 중요시설보호구역 등에 묶여 있어 산업단지 조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동의와 협조도 필요한 만큼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이전지는 없다"며 “소공인협회와 함께 적합한 후보지를 계속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구는 이번 사업이 강제 이전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임대료 상승으로 소공인들이 현 위치에서 버티기 어려워지면서 협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돕는 차원"이라며 “구청이 개발을 위해 내보내는 것이 아니고 이주비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사업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공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이전할 수 있는 적합 부지를 찾는 것"이라며 “구는 후보지 검토, 타 지자체 협의, 특별법 제안 등 행정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 역시 현재 공식적인 산업단지 조성 협의가 진행된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영등포구에서 관련 의견을 보내온 것은 맞지만 내용은 산업단지 지정 협의라기보다 법 제정 건의에 가까웠다"며 “문래동 기계금속단지 이전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취지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인 산업단지 조성 절차라면 국토부에 산업단지 지정계획 협의가 들어와야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협의가 접수된 것은 없다"며 “국토부 차원에서 별도로 검토 중인 사업도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문래동 문제를 단순한 이전 논의가 아닌 도시의 다양성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문래동 사례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며 “카페와 문화시설이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오랫동안 지역을 지켜온 제조업체들이 밀려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국내 개발사업의 이주대책은 주거 중심으로 설계돼 왔지만 장기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영업해온 세입자 형태의 소공인과 제조업체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부재했다"며 “문래동처럼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제조업 집적지가 사라지는 문제를 개인 사업자의 경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시정책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도시는 주거와 상업시설뿐 아니라 제조업과 소공업이 함께 존재할 때 다양성이 유지된다"며 “땅값 상승과 상업화로 인해 이런 공간들이 계속 밀려난다면 도시의 기능 역시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통이전 논의와 관련해서는 현실적인 한계도 언급했다.


최 소장은 “공공이 개입해 수도권 내 대규모 이전 부지를 마련한 선례가 거의 없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왜 이 문제를 공공이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명분과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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