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관련주를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글로벌 증시가 최근 급락세를 보이자 이번 조정이 일시적 숨고르기인지, 아니면 강세장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스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증시를 둘러싸고 과열 경고와 추가 상승 기대가 동시에 제기되면서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16% 내린 5만786.01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0.30% 오른 7405.73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0.86% 상승한 2만5929.66에 각각 마감했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지난주 각각 2.6%, 4.7% 하락하며 9주 연속 상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반등은 기술주와 반도체주가 주도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5.61% 오르며 직전 거래일의 10.3% 급락분을 일부 만회했다. 인텔이 11% 넘게 급등했고 마이크론(9.87%), 샌디스크(5.30%), 엔비디아(1.73%) 등도 일제히 상승했다.
미국 반도체주의 반등에 힘입어 한국 증시도 회복 흐름을 나타냈다. 9일 오후 12시 25분 기준, 코스피는 전장 대비 4.48% 오른 7819.35를 기록 중이다. 지수는 2.85% 상승한 7697.76으로 출발한 뒤 장중 한때 7847.74(4.85%)까지 치솟았다.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코스피 시장에서는 장 초반 프로그램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그러나 월가에서는 최근 조정을 단순한 매수 기회로만 보지 않는 목소리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약세장 경고 신호가 너무 많다"며 투자자들에게 “차익 실현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사비타 수브라마니안이 이끄는 전략팀은 약세장 신호의 약 70%가 최근 들어 활성화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과거 주요 증시 고점 국면에서 관찰된 평균 수준과 비슷하다. 보고서는 “S&P500 지수는 20개 밸류에이션 지표 중 17개에서 통계적으로 고평가 상태에 있고, 8개 지표는 닷컴버블 당시와 비교해도 고평가 상태"라고 밝혔다.
BofA 증권은 또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은 종목들의 수익률이 저평가 종목들을 크게 앞서고 있는 점을 “과도한 투기의 신호"라고 지적했다. 수브라마니안 전략가는 “기술 섹터 내 수익률 상위 종목들과 하위 종목들의 격차는 2000년 2월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S&P500의 강세장 또한 시장 내부의 불안을 가리고 있다"며 “최근 3개월 동안 S&P500 지수의 수익률 상위 10% 종목과 하위 10% 종목의 격차가 코로나19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극단적인 주가 움직임은 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라고 경고하면서도 지수 전체보다는 개별 종목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올해 S&P500 연말 목표치를 7100로 제시했다. 이는 이날 종가인 7405.73보다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앤드류 타일러 글로벌 시장정보 총괄도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단기 증시 전망을 '강세'에서 '전술적 신중'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채권시장 변동성 확대, 포지션 청산, AI 관련주 차익실현 가능성, 기업들의 주식 발행 증가 등을 단기 조정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더(사진=UPI/연합)
이렇듯 글로벌 증시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증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NBC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5월말 기준, 외국인의 코스피 순유출 누적 규모가 약 620억달러(약 94조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코스피 매도세를 한국 증시에 대한 비관론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무라의 체탄 세스 아시아태평양 주식 전략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강제 매도"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국 증시가 급등하면서 글로벌·신흥국 벤치마크 지수 내 한국 비중이 확대됐고, 이에 따라 글로벌 펀드들이 포트폴리오 비중과 위험관리 한도를 맞추기 위해 보유 주식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스 전략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며 “조정 이후 더 나은 진입 시점을 기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맨그룹의 닉 윌콕스 전무도 “많은 매도는 투자자들이 액티브 운용 한도에 근접하면서 발생하는 강제 매도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글로벌 증시에 대한 낙관론을 유지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3월 저점 이후와 같은 속도로 시장이 일직선으로 상승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조정은 불가피했으며 오히려 강세장이 연말까지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건강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가 이끄는 전략가들은 기업 실적 전망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며 S&P500 연말 목표치를 기존 7700에서 8100로 대폭 상향했다.
UBS 글로벌자산관리의 마크 헤펠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자들이 AI 전망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최근 기술주가 기대치 충족 여부를 둘러싼 우려로 조정을 받고 있지만 기업들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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