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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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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다변화·전속계약·최고가격제…정유사 ‘사업 재편’ 압력 커졌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4.21 17:40

미-이란전 발발 직후 원유 수입 중동산↓ 북미산↑
전쟁 장기화에 원유수급 다변화 확대 노력 가속화
비중동산 원유 정제 대대적 설비전환 투자에 부담
주유소 전속구매 개선, 최고가격제 지속 수익 걱정
‘발등의 불’ 원유 대체수급, 개편이행 가속화 관건

FILE PHOTO: Cargo ships in the Gulf, near the Strait of Hormuz

▲화물선들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에서 항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정유업계가 원유 수급부터 유통·소비 단계까지 사업 전반의 재편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수급 불안이 대두된 중동산 원유 대신 북미·호주산 같이 운송거리가 멀어도 지정학적 변수에 덜 취약한 원유로 다변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정제 설비 투자 여력이 부족한 데다, 국내 석유제품 유통 관행 개선과 물가 안정을 위한 공급가 제한 요구로 정유사의 수익구조 악화라는 부담까지 안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당장 대체 수급처를 찾고 물량 계약을 성사하기에 바빠 구조 변화 압력에 대비한 투자나 대응책 준비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이 차질을 빚으면서 정유사들의 대(對)중동 원유 의존도 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로 집계된 지난 3월 국내 수입 원유는 59억 5282만달러(약 8조 76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수입량이 두번째로 많은 미국산 원유가 13억 7804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75.8% 증가했다. 지난해와 올해 1~2월 수입이 전무했던 에콰도르에서도 1억 5272만달러 수입했고, 호주에서 수입한 원유는 1억 4857만달러로 44.7% 증가했다.


반면에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3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4위 이라크, 5위 쿠웨이트 등 주요 중동국가에서 들여온 원유는 줄었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의존도를 10년 전 약 80%에서 70%로 줄이고 미국산 도입 비율을 20%로 확대하는 등 원유 수급 다변화를 조금씩 해왔다.


하지만, 중동산 의존 구조를 바꾸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중질유이면서 황 함유량이 많은 중동산 원유에 맞춰진 국내 설비구조에서는 미국산 등 물성이 다른 원유를 투입했을 때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잔사유 등 경제성이 낮은 기름까지 열분해 같은 공정을 거쳐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식으로 원료 대비 생산 효율을 높여왔다.


또한, 정유업계는 국내 유통과 소비 단계에서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와 완화된 전속계약 방식의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3월 13일부터 2주 단위로 휘발유와 경유, 등유의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을 산업통상부 고시로 정해오면서 정유사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이달 10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적용되는 3차 최고가격이 리터당 2000원선을 넘지 않는 2차 때 수준으로 동결되면서 국제 시장의 석유제품 가격 변동에 연동해서 결정한다는 원칙이 흔들렸다.


이에 따른 정유사 손실을 어떻게 보전할지는 정부와 정유사가 분기 단위로 논의하기로 하고 최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 5조원에 관련 항목을 담았다. 그러나 정유사들이 예상하는 손실 규모가 조 단위까지 거론되고 있어 최고가격제의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찍히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추진으로 지난 9일 정유 4사와 주유소업계가 물량 전속구매 계약의 적용 최대한도를 60%로 정한 사회적 합의도 형평성 문제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유소업계가 그동안 정유사와 관행이었던 물량 전속구매 계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사후정산 제도 폐지 방안과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렸던 것이다.


정유사들과 주유소업계는 큰 틀에서 잡은 합의를 이행할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 논의하기로 했지만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주유소들은 시설물 설치 비용과 마케팅 비용 일부를 지원받는 식의 '주고 받는 관계'가 전속구매 계약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용 지원이나 정유사 연계 신용카드 혜택에 60% 비율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거나, 특정 정유사 브랜드를 간판으로 달면서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소비자에 제공하는 등의 모순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에 정유사들이 설비 개조 투자를 추진하거나 손실 보전 등의 논의를 통해 대응해야 하지만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기 쉽지 않는 상황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은 정세 불안 리스크에도 도입 비용이 낮고 생산 효율 극대화로 가격·품질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중동산 원유에 맞춰왔기에 특징이 다른 원유 도입을 확대하려면 설비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정유사들이 대체 원유 확보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어 일련의 사업 재편 움직임이 속도를 낼 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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