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일본이 대미 투자를 활용해 미국과 현실형 에너지 안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천연가스 퇴출 분위기와 원전 투자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미국과의 에너지 협력이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내 원전 신규 건설을 포함한 협력 방안이 핵심 의제로 논의됐다. 양국은 기존 투자에 이어 추가적인 대규모 에너지 투자 계획까지 공식화하며 '에너지 안보 동맹'을 구체화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관세협상으로 미국에 총 5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먼저 1차 프로젝트로 산업용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프로젝트, 미국산 원유 수출 기반 시설 건설, 가스발전 프로젝트 등 360억달러(54조1000억원) 규모 3개 사업을 확정했다.
이어 2차 프로젝트로 원전과 가스발전 등 3개 사업에 총 730억달러(109조2000억원)를 투자한다. 대상은 △일본 히타치제작소와 미국 GE의 합작사인 'GE베르노바-히타치'의 테네시주와 앨라배마주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건설. 투자 규모 400억달러(60조1000억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운용에 필요한 펜실베이니아주와 텍사스주 가스발전 건설. 투자 규모 각각 170억달러(25조4000억원), 160억달러(23조9000억원) 등이다.

한·일 대미 원전·천연가스 전략 비교
이번 일본의 투자 전략은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속에서도 전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과 가스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일본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의도로 평가된다. 특히 SMR을 미국 내에서 직접 건설하는 방식은 단순 기자재 수출을 넘어 사업 개발·운영까지 포함한 '풀 밸류체인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한국은 최근에야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됐으며, 투자 후보 사업을 검토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격차는 에너지 협력의 출발점인 외교 무대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긴장 국면에서 일본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직접 미국을 방문해 원유·LNG 공급 안정과 에너지 협력 강화를 위한 협상에 나서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국가 정상 차원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린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이 아닌 김민석 총리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이 실무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정상 외교가 갖는 정치적 무게감과 협상력에 비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에너지 협력은 단순한 산업이나 통상 이슈가 아니라 정상 간 신뢰와 결단이 좌우하는 '정치·외교적 사업'이라는 점에서, 한·일 간 격차는 투자 규모 이전에 외교 레벨에서부터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한국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원전 사업 전략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사실상 차세대 원전 시장의 핵심 무대가 되고 있음에도, 한국은 투자·사업 참여 모두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취임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김회천 사장은 취임사에서 “대형 원전과 SMR을 투트랙으로 원전 시장 선점 전략을 수립해 해외 원전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김 사장이 내놓은 주요 과제 중 원전 수출은 가장 후순위에 있어 향후 공격적인 수출 전략이 이어질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태다.
기후부-산업부 이원화로 '컨트롤타워 부재'…구조적 한계
현재 원전 수출 및 해외 에너지 사업 관련 기능이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분산되면서, 전략 수립과 실행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설되면서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담당하던 전력산업분야는 전부 이관된 반면 석유, 가스, 광물, 원전 수출 분야는 산업통상부에 존치됐다. 이로 인해 부처간 다시 협의체를 만드는 등 비효율성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과 일본처럼 정상외교를 기반으로 대규모 패키지 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의사결정 체계가 필수적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부처 간 조율에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미·일 협력이 단순한 투자 협정을 넘어 글로벌 원전, 천연가스 시장 주도권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원전 산업을 부활시키고, 일본은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 재진입을 노리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책·기업·외교 전략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채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전은 단순한 발전원이 아니라 외교·산업·금융이 결합된 국가 전략 사업"이라며 “지금처럼 분산된 구조와 소극적인 투자 기조가 지속된다면,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던 한국 원전 경쟁력도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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