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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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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승의 부동산뷰] 해외는 100년 사는데 한국 아파트 수명은 30년… “구조 변경·수선 필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3.04 11:26

배관 공사 어려운 벽식 구조 한계로 아파트 수명↓
1기 신도시인 일산 등에서도 주거 불편 호소 나와
리모델링 자유로운 기둥식 구조로 대체 필요 지적
“재건축 점점 어려워…고치며 사는 수선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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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최근 은마아파트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후 아파트의 안전 취약성과 재건축 중심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공동주택을 100년 이상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국내 아파트의 평균 수명은 30년 안팎에 그친다. 배관 교체와 구조 변경이 어려운 벽식 구조 위주의 설계가 주요 원인으로, 유지관리와 수선이 용이한 기둥식 구조를 확대하고 대수선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1979년 준공된 은마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단지다. 스프링클러 설비가 소방법에 따라 의무화된 시점은 1992년으로, 그 이전에 공급된 아파트 상당수는 화재 안전 기준 측면에서 제도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급격한 도시화와 대량 주택 공급 과정에서 제도와 기술 기준이 빠르게 변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노후 단지의 현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기 신도시인 일산에서는 주차 공간 부족과 마감재 탈락 등 물리적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일부 단지는 세대당 주차대수가 0.57대 수준에 그쳐 만성적인 주차난을 겪고 있으며, 천장 마감재 이탈과 석면·곰팡이 문제, 노출 배관과 누수, 내부 균열 등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비용 절감 위한 벽식 구조로 아파트 수명 짧아져…재건축 선호도 한 요인

국내 공동주택의 평균 수명이 짧은 배경에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2024년 발간한 '주택 리모델링 시장의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공동주택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으로, 미국(55년), 영국(77년)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국내 아파트의 상당수가 벽식 구조로 지어지면서 부분 보수나 평면 변경이 쉽지 않고, 결국 철거 후 재건축에 의존하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벽식 구조는 벽체와 슬래브가 하중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별도의 기둥 없이 벽이 건물의 골격 역할을 한다. 상하수도관과 각종 배관을 벽과 바닥에 매립한 뒤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구조여서, 노후화로 배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일부 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대규모 철거와 재시공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시공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과거 대량 주택 공급기에는 경제성이 높았지만, 장기 거주와 유지관리 측면에서는 제약이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기둥식 구조는 보와 기둥이 하중을 담당하고 벽체는 비내력벽으로 구성된다. 배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기둥을 그대로 둔 채 벽체만 철거해 보수할 수 있어 구조 변경과 리모델링이 비교적 수월하다. 장기 사용 가능한 주택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둥식 구조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특임교수는 “과거에는 절대적인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만큼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벽식 구조가 주로 채택됐다"며 “벽식 구조는 자동화 거푸집 등을 활용해 층 단위로 빠르게 시공할 수 있어 공사 기간이 짧고 인건비 절감 효과도 컸다"고 설명했다. 다만 “벽이 구조체 역할을 하는 특성상 준공 이후에는 리모델링이나 공간 구조 변경이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사업이 건설사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수익성이 높은 방식이 유지돼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오피스 건물은 대부분 철골 기반의 기둥식 구조를 적용한다"며 “국내에서도 타워팰리스나 쉐르빌 등 일부 주거단지는 기둥식으로 지어졌다"고 했다. 이어 “기둥식 구조는 장수명 설계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벽식 구조를 전제로 30년 주기 재건축이 이뤄지는 구조가 돼 있다"며 “다만 실제로는 준공 30년을 훌쩍 넘어 50~60년 이상 사용하는 단지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것은 배관 등 일부 설비이지, 콘크리트 구조체는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 구조적으로는 100년 이상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해외에서는 100년이 되기 전에 전면 철거를 하는 사례는 많지 않고, 거주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수선·보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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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장수명 주택 최우수·우수 등급을 적용한 실증단지 '세종 블루시티' 전경. 사진=국토교통부

실제로 정부도 장수명 주택 확산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실증단지를 조성한 바 있다. 2019년 국토교통부는 국내 최초로 장수명 주택 최우수·우수 등급을 적용한 '세종 블루시티'를 준공했다. 이 단지는 기둥식 구조를 적용해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과 보가 지지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실내 벽체는 경량벽체로 시공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철거·변경할 수 있으며, 재건축 없이도 가족 구성 변화에 맞춰 내부 공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건축했다. 또, 철근 피복 두께와 콘크리트 강도 역시 일반 주택보다 강화해 물리적·화학적 열화를 최소화했다.


이 같은 제도적·기술적 기반이 마련됐음에도 장수형 아파트 확산보다 전면 재건축이 반복된 배경으로는 수익 구조와 시장 인식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고급화 흐름과 선분양 구조 속에서 신규 단지가 첨단 설비와 스마트 시스템을 앞세워 상품성을 높여온 점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택보다 신축 아파트의 가치가 더 크게 오른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즉, 결국 재건축을 통해 자산 가치가 오른다는 기대가 시장 전반에 형성되면서 재건축은 대표적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과거 개포동 등 저층 단지를 초고층으로 탈바꿈시키며 조합원 수익이 크게 늘어난 사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사비 부담으로 재건축 추진 가능성↓…“대수선 등으로 고쳐가며 살아야"

다만 현재는 압구정동과 한강변 일대 등 일부 핵심 입지를 제외하면 과거와 같은 사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건축은 노후화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은 아니며, 적절히 고쳐 쓰면 충분히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 개발된 단지들은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높이면 수익성이 보장되는 구조였다"며 “그런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에 재건축이 추진된 것이지, 단순히 노후화 문제만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가격 상승이나 수요 증가가 충분하지 않다면 과거처럼 30년 주기로 재건축을 반복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보수와 개선을 통해 사용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입지적으로 도심에 위치해 사업성이 있음에도 각종 규제로 재건축·재개발이 원활하지 않았던 지역은 그간 누적된 압력이 현재의 재건축 추진 움직임으로 나타난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현장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로 지정된 일산 일부 단지는 분담금 부담으로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지 않는 분위기다. 분당 역시 동일 평형 기준 수억원대 분담금이 거론되는 등 공사비 급등이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이 지속되면서 '수익성 있는 재건축'은 점차 줄어들고, 새 아파트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추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 부담도 변수다. 전면 재건축은 기존 건축물을 대거 철거하는 방식이어서 건설폐기물이 대량 발생하고, 수십 년간 형성된 녹지와 생활 생태 환경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한계가 있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은 전면 철거 중심의 정비에서 벗어나 성능 개선과 부분 보수를 중심으로 한 방식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원철 교수는 “최근 현대건설이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와 '주거환경 개선 신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재건축 대신 대수선을 추진한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이사할 필요 없이 지하주차장과 외벽 등을 개선하고, 세대 내부는 개별 수선을 통해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새 아파트 수준으로 주거 환경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건설이 사업을 시작하자 다른 건설사들도 관련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전면 재건축이나 대규모 리모델링보다 '개선' 중심으로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사업은 공용부의 외벽·주동 출입구·조경·커뮤니티 공간을 개선하고, 지하주차장 시스템과 전기차 화재 방지 설비, 스마트 출입 제어 시스템 등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세대 내부는 층간소음 저감 구조, 고성능 창호, 에너지 절감 설비 등의 인테리어 공사를 희망 세대에 한해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상승과 사업성 저하가 이어질 경우 국내 역시 선진국처럼 수선과 개선을 전제로 한 장수명 주택 체계로의 점진적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제도 정비와 함께 금융·세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주거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을 200년까지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최소 100년 정도는 갈 수 있는 건축물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조합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 차원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술 개발 시 기술 개발비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 지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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