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기후리더십은 희생이 아니라 성장 전략이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0.27 10:50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 사회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올 해 말까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까지 영국 미국 일본 호주 등 59개국 외에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많은 국가들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렇게 주춤하는 이유는 2035 NDC가 단순한 환경 공약이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산업구조, 에너지 시스템, 사회적 비용 분담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국가 차원의 중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감축경로와 유사한 형태의 48% 감축안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배출책임과 경제적 역량 등을 고려하여 65% 감축이라는 야심찬 감축안까지 4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과도한 감축 목표는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시민단체는 “지금의 속도로는 기후위기 대응 기회를 놓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과 사회적 갈등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각 국이 처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2035년을 새로운 기후전환의 분기점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81% 감축을 공식 선언했고, 미국은 2005년 대비 61~66% 감축을, 일본은 2013년 대비 60% 감축을 설정했다. 2035 NDC를 제시한 국가들 중 유일하게 파리협정 목표인 1.5도 억제시나리오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경우, 자국의 기후변화위원회를 비롯한 과학계와 고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산업・일자리 창출, 법적 일관성 유지, 에너지안보 강화 그리고 글로벌 기후 리더라는 위상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정부의 입장은 실현가능한 야심찬 감축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짚어봐야 할 사안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 구조는 2024년 기준 원자력 32%, 석탄 28%, 가스 28%, 재생 10% 수준이다. 원자력 비중이 높다는 강점이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확대 속도와 송전망 확충이 뒤따르지 않으면 탄소중립 경로는 불안정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여전히 에너지다소비 업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이 철강·석유화학·시멘트·정유 등 고탄소 산업에서 발생한다. 이 부문이 변하지 않으면 전력 믹스를 청정하게 바꿔도 전체 온실가스 배출은 크게 줄지 않는다. 따라서 야심찬 NDC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구조 전환 전략이 뒤따라야만 한다.


독일의 씽크탱크, 아고라 에너지전환연구소(Agora Energiewende)는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약 1,330조원의 투자비용이 필요하며, 2035년까지는 약 280조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 감축하는 경우 2035년 GDP는 최대 2.3% 감소하며, 온실가스 1톤을 감축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최대 9만원으로 전망하였다. 이처럼 야심찬 NDC를 추진할수록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 및 세제 부담이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이러한 단기적 비용 상승은 재생에너지 확대,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화석연료 의존도 하락, 에너지 수입 비용의 감소, 에너지 안보 증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순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구조 전환을 이뤄낸다면 국민의 부담은 일시적 비용이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외에 중요한 이슈는 비용의 투명한 공개와 공정한 분담이다. 누가 어떤 비율로 전환비용을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탄소감축은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투자로 이뤄지며, 이를 감추거나 미루면 미래 세대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때 전기요금 인상 없는 탈원전・탈석탄 중심의 에너지전환정책 추진이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던 아픈 경험을 되살려, 정부는 요금 인상폭·세제 조정·산업 지원 규모 및 계획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관련된 비용에 대한 정의로운 분담구조를 설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2035 NDC 설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한국 사회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기후리더십은 희생이 아니라 성장 전략이다." 영국 총리 Keir Starmer가 작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왜 영국이 1990년 대비 2035년 81% 감축이라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2035년 NDC는 성장의 제약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이다. 현실적 야심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한국은 기후 리더십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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