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완 한국항공대 초빙교수 /전 주ICAO대표부 대사
우리나라는 지난 9월 30일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42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에서 2026~2028년 임기의 이사국(파트 3)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이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우리 항공 위상의 반영이자, 192개 회원국을 상대로 치밀하게 선거 외교를 펼쳐온 정부의 성과다.
ICAO 이사회는 급변하는 국제 항공 질서를 조정하고 기술표준을 제정하는, 말 그대로 '항공 외교의 중심 무대'다. 우리나라는 1952년 ICAO 가입 이후 기술협력을 발판으로 항공산업을 키워 왔다. 지금은 ICAO 정규예산 분담금 7위, 항공운송량 8위, 인천공항 국제승객 처리능력 3위라는 성과를 기록하며 항공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3년 우리 항공산업(연관 산업 포함) 규모는 780억 달러로 GDP의 4.6%를 차지하며, 약 12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팬데믹 이후 세계 항공수요는 빠르게 회복해 지난해 승객 수가 46억 명에 달했으며, 2050년에는 124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 효율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국제항공의 과제는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항공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기여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ICAO 이사국 파트 승격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파트 3 지위는 지역 대표성에 머무르고 있어 우리의 항공 능력과 기여도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3년마다 치열한 선거운동을 반복하며 외교적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다행히 시카고협약 개정안(2016년) 발효로 조만간 이사국 정원이 확대되어 파트 조정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상임이사국인 파트 1 또는 파트 2로 승격하기 위한 전략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둘째, 정부 내 ICAO 전담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ICAO가 채택한 19개 부속서와 1만 2천 개이상의 기술표준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를 분석·시행할 전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 4월 '항공안전혁신방안'을 발표하며 항공 거버넌스 개편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제는 항공 안전과 행정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ICAO 활동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개발도상국과의 항공 협력사업을 'K-항공' 브랜드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는 2001년 이후 140개국 3,500여 명의 항공청 공무원에게 교육·훈련을 제공해 왔다. 이는 ICAO의 핵심 가치인 “No Country Left Behind(모두를 위한 항공발전)"를 구현한 대표적 모범 사례다. 향후 급증하는 항공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 사업을 체계화하고, 지역·분야별 맞춤형 지원을 결합해 'K-항공'이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넷째, ICAO 사무국 고위직 진출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인재의 고위직 진출은 전무하다. 항공 전문가 풀을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번 ICAO 이사국 선출은 단순한 지위 유지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다. 2050년 항공 탄소중립 실현, 선진항공모빌리티(AAM) 도입, 인공지능(AI) 활용 등 미래 항공의 거대한 도전을 슬기롭게 대처하며, 책임 있는 항공 선도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