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2030~2060년 사이 전국에 최대 200조 원의 기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은 지난 7일 시간당 15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면서 침수된 전북 군산시 나운동 상가 일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 등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지속할 경우 이러한 피해 규모는 앞으로 수십 배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인구와 자산이 집중된 수도권이 전체 피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나 기후 리스크가 국가경제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유종현 교수와 서울시립대 최미희 연구원이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발표한 '한국의 지역별 기후변화 피해비용 및 탄소의 사회적 비용 추정' 논문에 따르면, 2030~2060년 한국이 입을 기후변화 피해는 현재가치로 87조원(최소 26조~최대 200조원)으로 추산됐다.

▲(자료=한국기후변화학회지, 2025)
◇2030~2060년 수도권 피해만 최대 114조원
연구팀이 기후변화 피해 비용을 시·도별로 분석한 결과, 경기도·서울·인천 등 수도권의 피해 규모가 전체의 57%를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는 2030~2040년에는 연평균 2조원(연간 최대 5조원), 2040~2060년에는 연평균 13조원(연간 최대 38조원)의 피해가 전망됐다. 경기도는 경제·인구 자산이 집중돼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향후에도 이러한 취약 자산의 증가가 전망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인구 및 경제 자산이 집중된 서울과 인천의 피해비용도 높게 나타났다. 서울은 2030~2040년에는 연평균 1조 원(연간 최대 3조원), 2040~2060년에는 연평균 5조원(연간 최대 15조원)으로 추정됐다. 인천은 2030~2040년 연평균 1조원(연간 최대 2조원), 2040~2060년 연평균 4조원(연간 최대 12조원)으로 전망됐다. 다만 경기도와 비교해 서울의 경우 빠른 인구 감소 전망이, 인천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 규모로 인해 경기도보다 피해비용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추정됐다.
2030~2040년 수도권 피해액을 합치면 연평균 4조원, 연간 최대 10조원 규모이다. 하지만 2040~2060년엔 수도권 피해액이 연평균 22조원, 연간 최대 65조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수준이다.
2030~2060년 전체로는 수도권 피해규모가 52조원(최소 17조~11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대구와 부산도 각각 2030~2040년 연평균 4000억원(최대 1조원), 2040~2060년 연평균 2조원(최대 5조원)의 비교적 높은 피해 비용이 추산됐다.

▲(자료=한국기후변화학회지, 2025)
◇기후변화 충격은 대전·광주가 더 커
지역내총생산(GRDP) 대비 기후변화 피해비용 비율이 2030~2040년에는 모든 시·도에서 0.0 ~ 0.5% 구간에 분포하였으나, 2040 ~ 2060년에 이르면 0.5 ~ 2.3%로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평균은 4배 이상 증가했다. 2040~2060년에는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3개 지역이 GRDP 대비 피해비용 비율이 1%를 초과했다.
2030~2040년에 비교적 낮은 비율을 보였던 충북(0.16%)이 2040~2060년에는 0.74%로 상승했고, 울산은 0.14%에서 0.65%로, 전북은 0.12%에서 0.54%로 크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절대 피해액은 수도권이 크지만 경제 규모와 비교했을 때,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충격은 대전·광주가 더 컸다. 2040~2060년 기후변화 피해비용 비중은 대전(2.34%), 광주(2.09%), 인천(2.06%), 세종(2.03%)의 순이었다. 대전은 전북(0.54%)과 비교하면 약 4.3배나 됐다.
◇탄소 1톤의 피해비용…경기도 4199원 vs 전북 94원
지역별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1톤의 탄소배출이 해당 지역 내에서 초래하는 장기적 한계 피해 비용을 의미한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 산출은 시·도별 연간 피해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후 시·도별 비중을 산출하고, 이를 가중치로 사용해 국가 전체의 탄소 사회적 비용을 시·도별로 배분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현재가치 산정을 위해 2025년 기준 연 3%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탄소 1톤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지역별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경기도는 이산화탄소 1톤(tCO₂)당 4199원이었고, 서울은 1885원, 인천 1398원이었다. 이에 비해 전북은 94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경기도에서 탄소 1톤을 줄일 때 얻는 편익은 전북보다 45배 크다는 의미다. 이는 향후 지역별 탄소세·배출권 가격 차등 적용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자료=한국기후변화학회지, 2025)
◇어떻게 분석했나: 확률 모델로 미래 리스크 반영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지역별 경제적 피해를 확률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단순히 특정 조건에서만 계산하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넘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전국 17개 시·도의 피해 규모를 예측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피해 비용 산정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됐다.
첫째, 미래 사회·경제·기후 시나리오를 구축했다. 인구와 1인당 소득 전망, 온실가스 배출 변화, 기온 상승, 강수량 변화를 지역 단위로 세분화해 예측하는 과정이다.
둘째, 강수량 변화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 상승보다 강수량 증가가 경제 성장에 더 부정적 영향을 주며, 강수량이 늘면 지역 경제성장률이 감소한다는 한국은행 분석을 적용했다. 기온 상승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판단에 따라 분석에서 제외했다.
셋째, 최종 피해 비용을 계산한다. '기후변화가 없었을 경우의 지역 경제 규모'와 '기후변화로 성장률이 둔화된 지역 경제 규모'의 차이를 피해 비용으로 본다. 즉, 성장하지 못한 차액이 곧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되는 셈이다.
이 방식으로 산출된 결과는 확률 분포 형태로 제시된다. 예컨대 “경기도는 2040~2060년에 연평균 13조 원(최소 2조~최대 38조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와 같은 식이다.
연구진은 “단순 평균 예측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한 위험 관리 지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최소 67% 감축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극단적 피해 발생 우려"
연구는 피해액의 분포가 우측으로 긴 꼬리 형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낮은 확률이지만, 발생하면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극단적 피해(tail risk)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등에 피해가 집중될 수 있는 만큼 전국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하는 데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과 대전·광주 등 취약 지역에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지역별 탄소 1톤의 사회적 피해비용을 바탕으로 예산 분배나 탄소세 등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으로 연구팀은 제안했다.
아울러 극단적 위험에 대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평균 피해액만 보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모든 지역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한 적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기후 리스크는 기업 실적과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안보 이슈'"라며, “지금까지의 전국 단일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별 맞춤 대응과 차등적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