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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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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 뚫린 커다란 구멍…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21 06:24

시베리아 천연가스 탓인가, 기후변화 탓인가

거대구멍

▲시베리아 야말 반도에서 발견되는 거대 구멍. (자료: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25)

2014년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의 야말 반도(Yamal Peninsula).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한 조종사가 땅 위에 거대한 원형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름이 수십 m, 깊이 50m에 달하는 검은 구덩이. 마치 누군가 땅속에서 거대한 포탄을 쏘아 올린 듯 흙과 얼음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이후 10년간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대형 구멍(Giant Emission Crater, GEC)'이 여덟 개나 더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곧 이 현상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누가, 아니 무엇이 이 거대한 구멍을 만든 것일까?"


야말반도

▲거대한 구멍이 발견되는 시베리아 야말반도와 기단반도. (자료: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25)


◇1막. 첫 번째 용의자 ― 기후변화


첫 번째로 지목된 용의자는 바로 지구 온난화였다. 실제로 구멍이 발견되기 직전, 야말 반도는 평균보다 4℃나 높은 이상 고온을 기록했다.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은 동토층(영구동토)을 녹이고, 땅속에 갇혀 있던 메탄(CH4)가스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빙하가 녹으면서 메탄이 빠져나가 폭발을 일으킨 게 아닐까?" 과학자들은 이런 추리를 내놓았다.


하지만 곧 의문이 제기됐다. 지구 전체 북극권은 다 같이 따뜻해지고 있는데, 왜 유독 야말·기단(Gydan) 반도에서만 이런 구멍이 생겨난 것일까?


거대구멍

▲물이 차오른 거대구멍. (자료: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25)


◇2막. 두 번째 용의자 ― 메탄 하이드레이트


다음으로 등장한 용의자는 메탄 하이드레이트(hydrate). 얼음 속에 갇힌 가스 덩어리다.


기온이 오르면 하이드레이트가 녹아 메탄이 풀려난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폭발을 일으킬 만큼의 압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험에 따르면, 얼음과 가스가 균형을 이루는 압력은 20~25 바(bar) 정도인데, 실제 구덩이에서 흙과 얼음이 수백 m 밖까지 날아가려면 30 bar 이상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결국 “하이드레이트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내리게 됐다.



◇3막. 세 번째 용의자 ― 지하 깊은 가스


그러자 새로운 용의자가 떠올랐다. 바로 지하 깊은 곳의 천연가스다.


야말반도는 세계 최대 가스전이 자리 잡은 지역. 땅속에서 끊임없이 가스와 열이 위로 치밀어 오르고 있다.


연구진은 가설을 세우게 된다.


지하에서 올라온 가스가 동토층 아래에 갇힌다. 동토층은 뚜껑처럼 가스를 막고, 위에는 얼음과 흙이 덮여 압력이 점점 쌓인다. 기후변화로 호수·강이 생기면서 얼음층이 더 얇아지고 약해진다. 결국 임계점을 넘으면… “꽝!"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이 시나리오는 실제 관측된 현상과 가장 잘 들어맞았다. 폭발 후에는 구덩이가 물로 차올라 호수처럼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동토지형으로 위장된다. 그래서 과거에도 수많은 구멍이 생겼지만, 지금은 호수 속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4막. 미스터리의 결론


과학자들의 최종 판정은 이렇다.


단순히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아 생긴 것이 아니다. 지하 천연가스가 동토층 아래에 축적되고, 기후변화가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하면서 폭발로 이어졌다.


즉, 범인은 지하 가스 + 기후변화의 공모였던 셈이다.


과정

▲1단계: 호수가 아래 퇴적토가 녹으면서 동토가 약해짐 → 2단계: 단층을 타고 올라오는 지하의 가스/열이 국부적으로 가스가 고여 과압력이 발생해서 폭발로 이어짐. 분출로 대형 구멍이 형성됨 → 3단계: 분출 후 붕괴를 거쳐 물과 퇴적토가 유입되며, 주변에 충돌 자국 등이 형성됨 → 4단계: 호수화·토탄화로 외형이 가려지고 재동결, 그러나 지하 재충전으로 재발 가능. (자료: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25)


◇5막. 남은 수수께끼


하지만 사건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왜 하필 이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가? 앞으로 북극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가? 동토층 속에 잠들어 있는 1,700억 톤의 탄소가 한꺼번에 풀려나면 지구 기후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들은 아직 열린 채로 남아 있다.



◇에필로그


시베리아의 거대한 구멍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탄처럼 보인다. “내 속에서 갇혀 있던 가스가 깨어나고 있다. 더 이상 기후를 흔들지 말라."


과학자들이 추적한 미스터리는 결국 지구 온난화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이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음 구멍이 어디서,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미스터리를 풀 열쇠는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Hellevang, H. 등 2025. Formation of giant Siberian gas emission craters (GECs).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https://doi.org/10.1016/j.scitotenv.2025.18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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