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사 쿡 연준 이사(사진=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받는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해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자 연준 이사회를 장악해 금리 인하를 이끌어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쿡 이사에게 해임을 통보하는 내용의 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헌법 2조와 1913년 제정된 연준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당신은 연준 이사직에서 즉각 해임됐다"며 “당신을 직위에서 해임할 충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민은 정책 입안과 연준 감독을 맡긴 이사들의 정직성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 사안과 관련한 당신의 기만적이고 범죄일 수 있는 행동을 고려하면 미국민들은 당신을 신뢰할 수 없으며 난 당신의 진실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문제가 되는 이 행위는 금융 거래에서 일종의 중대한 과실을 나타내며, 이는 금융 규제 기관으로서의 경험과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앞서 빌 풀트 미 연방주택금융청(FHFA) 국장은 팸 본디 법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쿡 이사의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풀트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친(親)트럼프 인사 중 한명이다.
쿡 이사는 2021년 미시간주 부동산에 대해 만기 15년짜리 20만3000달러(약2억8000만원) 대출을, 조지아주 부동산에 대해 만기 30년짜리 54만달러(약 7억5000만원) 대출을 받았다.
쿡 이사는 부동산을 사면서 실거주 용도라고 적었는데 조지자의 부동산을 2022년 임대로 내놨다는 것이 풀트 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서한에서 쿡 이사가 “더 낮은 금리와 더 유리한 대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미시간과 조지아의 부동산에 대해 거주 유형을 조작했다"며 “은행 서류와 부동산 기록을 위조했으며, 이는 형법상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주거용 주택담보대출은 투자·임대용보다 금리가 낫고 담보인정비율(LTV)이 높게 책정되는 등 조건이 좋다.
연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사유가 있을 경우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으며 통상 비효율성, 직무 태만이나 부정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쿡 이사가 해임됐다는 발표에 풀트 국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미국에서 모기지 사기를 저지른다면 우리는 당신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사 쿡 연준 이사(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FP/연합)
민주당 성향의 쿡 이사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임기는 2038년까지다. 쿡 이사는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당연직으로 참여하며, 지난 7월 회의엔 금리 동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날 쿡 이사가 해임 통보를 받자 파월 의장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 연준 이사회 중 과반인 4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파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7월 회의에 반대표를 던진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와 미셸 보우먼 부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임명했다. 이달 초 사임한 매파 성향의 아드라아나 쿠글러 이사의 후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인 스티븐 마이런을 지명했다.
여기에 쿡 이사의 퇴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을 지명해 연준의 금리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은 연준이 금리인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발표 이후 달러 가치와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미 국채금리가 모두 하락했다.
미 싱크탱크브루킹스연구소의 애론 클라인 선임 연구원은 “연준의 독립성을 확인 사살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라고 알리는 셈"이라고 밝혔다.
호주커먼웰스 은행의 캐롤 콩 전략가는 “쿡 이사의 해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은 새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달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를 뒷받침하는 연준 독립성이 더욱 시험대로 올라 달러 매도세가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은 미국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는 결정을 최근 내리면서도 “정치적 행위가 미국 기관의 건전성이나 장기 정책 수립의 효과, 또는 연준의 독립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신용등급은 압박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쿡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가 불법이라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쿡 이사는 성명을 내고 “법으로 정해진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유를 들어 해고하려 했고 그럴 권한도 없다"며 “2022년부터 해왔듯이 미국 경제를 돕기 위한 내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고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블룸버그는 쿡 이사의 상원 인준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2022년 2월 인사청문회 당시 일부 공화당원들은 쿡 이사가 거시경제와 통화정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인준 투표 결과가 50 대 50으로 동률이 나오자 카멀라 해리스 당시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