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스바겐그룹코리아 간판. 사진=이찬우 기자
폭스바겐 전기차가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과 미국에서 그룹의 신속한 신차 투입과 현지화 전략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하면서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같은 폭스바겐의 최근 움직임은 중국시장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에서 중국 전기차 메이커와 테슬라 등 선두업체를 뒤쫓고 있는 현대자동차에게 벤치마킹 본보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완성차업계는 폭스바겐의 반등 사례가 현대차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폭스바겐의 공격적인 신차 출시 전략과 가격 경쟁력 확보는 현대차가 눈여겨 봐야 한다고 업계는 강조한다.
다만, 폭스바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전략을 현대차도 똑같이 안고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스바겐, 다양한 신차로 유럽·美 점령…中에선 점유율 하락
11일 SNE리서치 조사자료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지난 1~4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2.7% 증가한 40만 3000대를 기록했다. 이는 BYD, 지리, 테슬라에 이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SNE리서치는 “폭스바겐그룹의 주력 전기차 모델인 ID.3, ID.4, ID.7, Q4 e-Tron 등 MEB 플랫폼 탑재 차량들의 판매 호조가 성장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폭스바겐의 주요 판매시장은 본거지인 유럽이었다. 지난 1분기 폭스바겐은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전년동기 대비 113% 늘리며 시장점유율 26%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ID.4, ID.3, ID.5, ID.7 등 다양한 세그먼트의 전기차를 신속하게 출시한 점이 그룹의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특히,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판매된 전기차 중 절반 가까이가 폭스바겐 차량일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과시했다. ID.4, ID.7, Q4 e-트론 등 MEB 플랫폼 기반 신모델의 인기가 독일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ID.7 투어러, 아우디 Q6 e-트론 등 신차 출시 효과도 높았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도 폭스바겐은 호조를 이어갔다. 지난 1분기 미국 시장서 전년 대비 51% 증가한 1만9900대를 팔아치웠다. 주로 ID.4와 ID. Buzz 등의 전기차가 실적을 견인했다는 평가다.
사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유럽에서 배터리 전기차 판매량이 7만4400대에 그치면서 유럽시장 점유율 약 13~14%로 테슬라 등 경쟁사에 1위 자리를 내주며 2~3위권으로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시장에서도 1만3200대 판매, 점유율 약 4% 내외에 그치며 현지 브랜드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런 폭스바겐이 올해 들어 판매량 호조에 따른 반등을 거둔 요인으로는 신차 출시 효과와 함께 현지 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 강화가 손꼽힌다.
폭스바겐은 독일 엠덴, 볼프스부르크 등 유럽 내 주요 공장을 전기차 전용으로 전환하고, 미국 채터누가 공장에서도 현지 생산을 확대해 공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덕분에 그룹은 ID.2all 등 보급형 모델을 2만5000유로 이하의 합리적 가격대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마르코 슈베르트 폭스바겐그룹 세일즈 마케팅 총괄은 “1분기에 세계적으로 순수 전기차 인도량을 크게 증가시켰다"며 “특히 유럽에서는 인도량을 두 배로 늘려 이 부문에서 선도적 위치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폭스바겐도 중국시장에서 행보는 여전히 아쉽다. 중국 시장에서 현지 브랜드의 약진과 치열한 가격 경쟁에 밀려 폭스바겐의 전기차 판매가 37% 감소한 것이다. 전체 판매 역시 지난해 10% 감소에 이어 올해도 추가 점유율 하락이 예상된다.
폭스바겐은 현지화 전략, 신모델 출시, 합작사 협력 강화 등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단기간 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폭스바겐 ID.4. 사진=이찬우 기자
폭스바겐그룹과 비슷한 현대차의 글로벌 전기차 전략
폭스바겐처럼 현대차그룹도 국내외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4월 글로벌 시장서 약 19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1% 상승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34.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스텔란티스, 포드, GM 등 경쟁사를 일부 구간에서 앞지르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현대차는 올해를 기점으로 공격적인 신차 출시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을 비롯해 EV4, PV5 등 다양한 전기차 신모델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고, 소형부터 대형까지 전기 SUV 라인업을 촘촘히 구축하고 있다.
가격 인상도 최소화하면서 상품성과 편의·안전 사양을 대폭 강화한 2025년형 아이오닉5, 코나 일렉트릭 등도 출시했다.
또한,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메타플랜트 건설, AI·IoT 기술 통합, 현지 맞춤형 모델 개발 등으로 시장별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까지 배터리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 연간 글로벌 판매 67만대, 2030년까지는 전동화 모델 비중 3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 역시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7%를 넘던 시장점유율은 최근 1%대로 떨어졌고, 판매량도 급감했다.
최근 중국 전용 전기차 일렉시오(ELEXIO) 출시, 현지 배터리업체와의 협력, 대규모 투자 등으로 재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 심화, 소비자 트렌드 변화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배터리 SK온 부스에 전시된 현대차 아이오닉 9. 사진=이찬우 기자
현대차그룹이 참고해야 할 폭스바겐 전기차 전략
업계 전문가들은 폭스바겐그룹의 유럽·미국 현지화 전략, 플랫폼 다변화, 신차 투입 속도,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장이 글로벌 반등의 핵심임을 주목하며 현대차도 이 같은 전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평가한다.
우선 시장별 맞춤형 현지화 전략과 신차 투입 속도가 주목된다. 폭스바겐은 유럽과 미국 등 핵심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 취향과 시장 환경에 맞춘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신속하게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했다.
현대차 역시 각 지역의 트렌드와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현지화 전략과 신차 출시 속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플랫폼 다변화와 전동화 생태계에 대한 투자도 중요한 포인트다. 폭스바겐은 MEB, PPE 등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세그먼트와 가격대의 전기차를 선보이고, 소프트웨어·배터리·충전 인프라 등 전동화 생태계 전반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 역시 전용 플랫폼 확대와 충전 인프라, 배터리 내재화 등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의존도 분산과 신흥시장 공략은 반면교사로 꼽힌다. 폭스바겐의 위기는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았던 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미 중국 비중을 낮추고 미국, 유럽, 인도, 동남아 등 신흥시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시장 다변화와 현지 맞춤형 모델 확대가 중요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만큼, 현대차그룹도 해외 EV 사업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