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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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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폴란드서 펼쳐진 글로벌 원전 세일즈場…한국은 없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5.29 14:15

세계원자력공급망회의 일본·중국·프랑스 참석…한국 정부·공기업 불참

두산에너빌, 현대건설 등 민간만 참석…“관이 같이 뛰어야 힘 나는데”

세계 원전시장 수주 위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전략적•전폭적 지원 필수

[바르샤바=전지성 기자] 현지시간으로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주관 'WORLD NUCLEAR SUPPLY CHAIN 2025'는 세계적 규모의 원자력발전 마케팅 장이었다. 일본, 프랑스, 중국, 인도, 스웨덴 등 글로벌 강국들이 자국의 기술과 산업을 내세워 유럽 원전 시장 선점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자국의 원전확대 계획을 상세히 알린 가운데, 정작 한국은 정부와 공기업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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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자력 공급망 회의(World Nuclear Supply Chain)'에 참석한 각국 정부 및 산업계 관계자들이 업무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전지성 기자


홍보 열 올린 일본,중국, 프랑스…한국 정부•공기업 불참 속 분투한 기업들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컨벤션센터. 각국의 국기를 앞세운 관료와 기업들이 넓은 행사장을 채운 가운데, 프랑스 EDF, 일본 미쓰비시, 스웨덴 Vattenfall, 인도 NPCIL, 중국 국영원전기업 CGN은 정부 인사들과 함께 정면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일제히 “우리 기술이 유럽 에너지 안보의 해답"이라며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다.


그러나 한국의 담당 부처와 대표적인 공기업인 산업통상자원부, 한수원, 한전 등은 부재였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등 개별 민간 기업들뿐. 이들 관계자는 “이런 행사에 정부·공기업이 같이 나와야 해외 발주처 신뢰도 확보가 되는데... 아쉽다"는 말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일본은 '관'이 나서고, 우리는 '민'만 뛰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국장은 직접 참석해 “일본은 원전 재도약을 선언했다"며 자국 원전기업을 직접 소개하고, 수출 파트너십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현장에서는 일본 원전업계가 정부의 전면 지원 아래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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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루다 마사노리(TSURUDA Masanori) 일본 경제산업성 국제자원에너지청 국제협력 부국장이 'WORLD NUCLEAR SUPPLY CHAIN 2025'에서 일본의 원자력확대 전략과 일본 원전 기업들을 소개했다. 사진=전지성 기자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원전 확장 기조를 바탕으로, EDF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해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프랑스의 한국전력공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이 행사의 메인스폰서로 참여한 것은 물론 바키사사이 라마니 발라(Vakisasai Ramany Bala) 부사장이 직접 발표자로 나서 “전 세계가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용량을 3배로 확대하려는 목표는 전례 없는 도전"이라며 “이를 위해선 단순한 신규 원자로 건설을 넘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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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NUCLEAR SUPPLY CHAIN 2025'에 후원사로 참여한 기업들과 정부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없었다. 사진=전지성 기자

라마니 부사장은 “지속 가능한 수요에 대한 자신감과 정부 차원의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 없이는 글로벌 원전 공급망은 확장될 수 없다"며 “EDF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다중 원자로 기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공급사에게 투자와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일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치 앞으로 유럽의 원전 시장은 EDF를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반면 한국은 정부 차원의 에너지외교는 사실상 전무했다.


“외교도 기술이다"…사라진 '에너지외교'

현장에 참석한 해외 관계자들은 한국 원전 기술의 경쟁력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정작 정치·외교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프랑스와 일본 측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의 차기 유력 대선후보가 전 정권보다 원전에 비판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원전업계는 물론 체코 또한 이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 체코 원전 사업이 한국 대선과 체코 총선 이후로 일정이 밀린 것과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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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산업성 공무원들이 'WORLD NUCLEAR SUPPLY CHAIN 2025' 현장에서 각국 정부, 기업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전지성 기자

폴란드 정부 측 관계자도 한국과 체코 간 진행 중인 원전 계약에 대해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지만,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파벨 가이다 폴란드 산업부 원자력국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사안은 정부 간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식적으로 개입하지 않지만, 향후 전개에 매우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프로젝트(체코 원전 계약)는 폴란드 정부의 공식 원자력 계획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장은 우리가 참여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서도, “KHNP(한국수력원자력)나 웨스팅하우스가 폴란드의 두 번째 원전 계획에 경쟁력 있는 제안을 한다면, 우리는 열린 자세로 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수원의 폴란드 현지 활동과 관련된 질문에는 “최근 한국 측과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다"며 “참여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발언은 향후 폴란드의 두 번째 원전 프로젝트 추진 시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협력 구도 및 기술 소유권 문제에 따라 입찰 자격이나 참여 범위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결국 외교적 뒷받침 없는 기술 수출은 '전략 없는 승부'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처럼 느껴졌다.


미국과의 밀약설?…체코 이후 유럽은 접나

일각에서는 “한국이 체코 이후 유럽 원전 수주는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과의 전략적 협약, 또는 공급망 연계 약속에 따라 유럽 내 경쟁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제 한수원은 유럽 주요 국가들의 원전 수주전에서 연이어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수원은 올해 네덜란드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서 2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차 조사에 참여하며 수주에 공을 들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수원은 체코 원전 최종 계약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또한 슬로베니아의 크르슈코 신규 원전 'JEK2 프로젝트'에서도 한수원은 사업 타당성 조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최대 2400메가와트 규모로, 사업비는 최대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수원은 체코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경영 판단이라고 밝혔다 .


아울러 한수원은 지난해 말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폴이 발주한 원전 수주전에서도 철수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은 한수원이 유럽 원전 시장에서의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체코 원전 수주에 집중하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원전 프로젝트에서는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 강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폴란드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협상 내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파격적 지원 없으면 기회는 없다"

두산, 현대 등 민간 기업들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기술 홍보와 파트너 미팅을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할 만큼 한다. 외교의 영역은 기업이 대신할 수 없다"는 말에서 절박함과 피로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 글로벌 수주 시장의 중심에서 한국은 지금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가? 글로벌 원전 산업은 한창 전열을 가다듬고 유럽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한국은 탄핵과 이로 인한 대선 정국으로 중차대한 시기를 놓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체코 최종 계약도 차일피일 밀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주처인 체코의 결정은 한국이 보이지 않는 외교전에서 얼마나 진심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차기 정부 출범 직후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할 때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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