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20세기 여성 해방에 가장 크게 기여한 물건."(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09년)
'인류의 삶을 바꾼 발명품' 하면 흔히 스마트폰·냉장고·에어컨·TV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복 생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주는 세탁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40년대 17kg 분량의 빨랫감을 세탁하는 데에는 대략 4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전기 세탁기의 발명은 이를 41분으로 대폭 줄여줘 가사 노동으로부터 여성 해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4일 찾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내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SIM)'에서는 '수(水)고로움의 혁신: The Innovation of Inconvenience'을 슬로건으로 한 세탁기 특별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이곳에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만들어낸 제품부터 비교적 최근 단종한 '유물'들까지 놓여있었다.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접어들며 국민 생활 수준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세탁기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해 독자 모델 개발에 나섰고, 1974년 12월 '펄세이터 방식'을 차용한 2kg 용량에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된 수동형 2조 세탁기를 선보였다. 이후 1976년 1조식 '은하 디럭스', 1983년 미세 구멍 25만개를 통해 분사하고 절전·절수 기능을 탑재한 '샤워 린스'를 내놨다.
1991년엔 전용 IC 회로를 적용해 센서로 오염 정도·빨래 양·수온·물의 양 등을 감지해 세탁 시간 최적화를 달성한 '뉴로-퍼지(Neuro-Fuzzy)'를 선봬 초기 수준의 인공지능(AI) 세탁기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듬해에는 특수 히터로 물 온도를 95도까지 삶는 '퍼펙트' 세탁기를, 1994년부터는 21년 간 스테디 셀러였던 '손빨래 세탁기'를 시판했다. 봉 세탁·회전판 방식을 혼합한 '애지펄(AGI-PUL)'을 도입해 세탁력을 제고했고, 엉킴과 옷감 손상도 역시 개선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드럼 세탁기가 등장했고, 이는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급박하게 세탁물을 추가하려면 전원을 끄고 다시 물을 채워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세탁 중에도 세탁물을 추가할 수 있고, 세제 없이 통 세척이 가능한 '버블 샷 애드 워시', 빨래판이 결합된 개수대를 설치해 애벌 빨래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액티브 워시'를 공개했다.
김동민 프로는 “친환경적인 기술로 삼성전자는 고객들께 새로운 세탁 경험과 다양한 삶의 가치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3월, 삼성전자는 3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세탁기 사업 50년의 헤리티지가 녹아든 '비스포크 AI 콤보'를 내놨다. 전작 비스포크 그랑데 AI가 세탁·건조기가 분리된 형태였다면 이는 일체형 제품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10여년 전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작업을 마치기까지 3~4시간이 소요됐고, 무엇보다 건조 효율이 떨어져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에 이무형 삼성전자 DA사업부 CX팀장(부사장)이 절치부심해 단독 건조기와 동일한 시간 내에 성능을 내도록 개발 방향을 잡았고, 그 결실을 '비스포크 AI 콤보'로 맺은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 출시된 비스포크 AI 콤보는 편리함·고성능·친환경·AI 기술을 두루 아우르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탁과 건조를 하나의 기계에서 처리하고, AI가 세탁물의 무게·재질·오염도를 감지해 자동으로 기계를 작동하는 일상에서 비스포크 AI 콤보는 삼성전자의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 비전 아래 '세탁기 100년'을 향한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