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고 있는 이란 국민들. 연합뉴스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러-우 전쟁 이후 또 다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동산 에너지 수입이 많기 때문에 러-우 전쟁 당시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다행히 이달 중으로 울산에 석유와 가스 약 500만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동북아 에너지허브가 본격 가동될 예정이어서 에너지 위기 대응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일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일 이스라엘군이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미사일로 폭격해 이란 군사령관 등 다수가 사망하면서 중동 정세가 극심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이번 폭격으로 다수의 이란군이 사망한 가운데 그 중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대외 작전부대인 쿠드스군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사령관 준장도 있다.
이란 지도부가 이번 자국 군 인사 습격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4년전에도 똑같이 당했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당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사령관이던 가삼 솔레이마니는 미군에 의해 이라크에서 암살 당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섰지만 민간 항공기를 적기로 오인해 격추시켰고, 이라크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폭격했지만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란 지도부가 이번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공격에서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성화는 오히려 내부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란의 공격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이스라엘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전면전은 힘들고, 미사일 공격도 이스라엘 방공망이 워낙 튼튼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통한 공격이 꼽히고 있다.
헤즈볼라는 1983년 이스라엘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해 현재는 레바논의 집권당까지 맡고 있다. 특히 헤즈볼라는 수천명의 민병대원과 이란의 지원으로 최신식 무기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경험도 갖고 있다. 여기에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동시 공격도 가능하다.
반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고, 더욱이 뒤에는 최우방국인 미국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때문에 이란 세력의 공격은 다른 방식을 취할 수 있다. 바로 에너지 시설을 공격해 국제유가를 끝없이 올리는 것이다. 이 방식의 효과는 이미 입증됐다.
1974년 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초반에는 효과적으로 공략했으나,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이스라엘군의 반격으로 패퇴하고 만다. 이스라엘군의 거침없는 진격이 이뤄지자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튀니지 등 이슬람 산유국들은 원유를 감산해 유가를 크게 올리자 결국 세계 각국의 반대로 이스라엘은 전쟁을 종료하고 말았다.
현재도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에 대한 보복성격으로 홍해를 드나드는 선박에 대한 테러를 일삼아 중동과 유럽 간 수출입 물류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실제 전쟁을 벌인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핵심 에너지 수출국의 통로인 페르시아만까지 테러 대상이 될 수 있어 에너지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치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27달러까지 오른 바 있다. 작년 10월 세계은행(IBRD)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다른 중동지역으로 확산할 경우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동은 전세계 원유 생산의 1/3, 천연가스 생산의 약 18%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중동산 원유 수입비중 71.9%, 천연가스(LNG) 수입비중 31.4%로 매우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어 수급 위기 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와 SK가스가 공동 출자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이 울산 북항과 남항에 건설 중인 동북아 에너지허브 조감도.
국내 충분한 비축시설은 그나마 충격을 줄일 수 있다.
국가 석유비축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석유공사는 작년 말 기준으로 총 1억4600만배럴 규모의 전국 9개 비축기지에 9690만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일인 100일분보다 많은 127일분이다.
여기에 정유사와 LPG수입사는 내수판매량의 각각 40일분과 15일분의 제품을 저장하고 있고, 전국 1만1000여 주유소와 2000여 LPG 충전소에 저장된 물량도 비축효과가 있다.
여기에 울산 북항에 건설된 동북아 에너지허브까지 본격 가동에 들어가 위기 대응력을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석유공사(52.4%)와 SK가스(47.6%)가 공동 출자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은 2020년 7월 착공 이후 거의 4년만에 북항에 총 170만배럴 규모의 오일탱크 12기와 총 405만배럴의 LNG탱크 3기, 3개의 선석을 보유한 허브기지를 준공했다. 이달 중으로 첫 카고물량이 입고될 예정이다. 프랑스 토탈, 일본 에네오스 등과 오일탱크 시설이용계약도 체결했다.
KET는 남항에도 허브기지를 구축할 계획으로 당초 1600만배럴 규모의 석유저장시설 건설계획을 수정해 수소 및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에너지원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현재 사업모델을 수립 중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동북아 에너지 허브기지는 단순한 비축 역할에 그치지 않고 물류창고처럼 물량을 자유롭게 사고 팔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기여가 될 것"이라며 “때마침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본격 가동에 들어가 그 역할과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