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본사.
2022년 러-우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유럽은 그 가격 대부분을 요금에 반영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의 통제로 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고 대신 국제 가격 인상분을 공기업들이 떠 안았다.
그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가 폭증해 연 이자비용만 수조원씩 나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요금이 낮아져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올려야 할 판이다.
5일 거래소 및 알리오 공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말 연결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2조4162억원, 한국가스공사의 총부채는 47조4286억원, 한국광해광업공단의 총부채는 8조120억원으로 에너지 공기업 3사의 부채 총합은 257조8568억원에 달한다.
부채는 남의 돈이기 때문에 원금 이외에 이자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나가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 3사의 2023년 부채 및 이자비용 현황.
▲에너지 공기업 3사의 2023년 부채 및 이자비용 현황.
3사는 작년 이자비용으로만 한전 4조4000억원, 가스공사 1조6000억원, 광해광업공단 2700억원 등 총 6조2700억원을 지출했다.
문제는 3사의 수익성이 여전히 좋지 않기 때문에 연간 수조원의 천문학적 이자비용이 계속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에너지 공기업의 열악한 재정문제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을 때 국내 요금 인상을 최소화한데서 시작됐다.
당시 국제 가스가격은 8배가량 급등했는데, 유럽은 이 가격을 요금에 반영한 반면 우리나라는 인상을 자제했다. 이로 인해 2022년 유럽 전기요금은 500% 폭등했으나, 우리나라는 주택용요금의 경우 14% 인상에 그쳤다. 현재 주택용요금도 2022년 초에 비하면 36% 인상에 그친 상태다.
가스공사 역시 요금 인상을 최소화고 대신 인상분을 나중에 국제가격이 안정됐을 때 받기로 하면서 미수금 15조7000억원이 쌓여 있는 상태다.
결국 요금을 제대로 인상하지 않은 후폭풍이 공기업의 열악한 재정상태와 그로 인한 천문학적 이자비용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 국제 가스가격은 가장 높았던 2022년 8월대비 90% 이상 떨어진 상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요금을 낮추기는 커녕 오히려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광해광업공단은 작년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1조1163억원, 영업적자 1042억원, 당기순적자 3120억원을 기록했다. 재무상태는 총자산 5조4698억원에 총부채 8조120억원으로 2조5422억원 자본잠식 상태다. 여기에 파나마 꼬브레 동광산 사업은 현지 법원 판결로 폐쇄 위기에 놓였고, 멕시코 볼레오 동광산 사업도 생산 부진 및 미지급금 사태로 자산가치가 현저히 낮아져 수익은 커녕 추가 투자비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공기업들이 주요 에너지산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부진은 전체 산업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경제 학자들은 요금 등 에너지정책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일관되지 않은 기조가 이 같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은 총괄원가에 맞춰 정하도록 돼 있는데 정치권이 필요에 따라 멋대로 조정하고, 해외 자원개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계속 바뀌면서 후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며 “요금은 정부 개입이 있을 수록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에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낫다고 본다. 자원정책도 정부가 탄소중립 등 명확한 비전 아래 장기적 계획을 갖고 제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