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9일(목)



[EE칼럼] 원자력 안전규제, 도둑잡기가 아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2.27 08:14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에는 비상디젤발전기가 있다. 정전이 발생해도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발전원과 달리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정지하고도 한동안 열이 발생한다. 정지 직후에는 정상출력의 6.5%, 1시간 후에는 1.5%로, 하루가 지나면 0.4%로 각각 시간이 지나면서 출력이 급격히 줄어든다.


원자로가 정지되었을 때는 전력생산을 하지 않으므로 옆의 원전에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것이 안될 경우 서로 다른 2군데 부지의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도록 되어 있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비상디젤발전기를 가동하고, 이것도 안되면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배터리가 있고 그것도 안될 경우에 대비해 발전차를 준비해두고 있다.


비상디젤발전기는 스위치만 누르면 단번에 시동이 걸리고 작동돼야 한다. 그게 규제요건이다. 지인이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규제요원의 입회하에 스위치를 눌렀을 때 작동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검사를 받기 전에 작동여부를 시험해 보고 수리를 해놓는다면 규제요원은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행위는 정기적 정비과정이 아니었다면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부정한 것인지 판단해 보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규제를 왜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대중의 건강과 안전에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도록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전되어야 한다.'


첫째,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당한 위험은 부과하겠다는 뜻이다. 시설이 있는데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걷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다. 세상사에 Zero risk(위험도 0)는 없다. 그렇다면 정당한 위험은 얼마만큼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교통사고, 익사, 낙상, 총기, 범죄, 독극물, 자연재해 등으로 입게 될 위험이 있다. 그 총합의 1/1000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감당할 위험으로 본다.




둘째, '대중의 건강과 안전'이 목적이다. 모든 안전이 아니라 대중의 건강과 안전이다. 위험은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대중과 환경을 위험하게 하는 것과 대중과 환경의 영향은 없지만 원자로가 녹아서 못쓰게 되는 것이다. 전자가 규제의 대상이고, 후자는 사업자의 재산상의 손실이므로 규제는 간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비상디젤발전기를 검사 전에 시험해서 수리해 놓는 행위는 원자력안전규제의 목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규제목적에서 보면 비상디젤발전기에 누가 손을 댔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비상디젤발전기가 정비돼 운전이 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느냐가 관심사다. 그게 대중의 안전과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검사 전에 비상디젤발전기를 수리한 사람의 처벌에 주목하는 것은 상해사고가 발생했을때 다친 사람을 놔두고 범인을 잡는 것을 우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자력시설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작동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디젤발전기가 스위치만 누르면 작동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검사 전에 미리 손을 댔는지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지게 된 것은 코미디다.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은 심사와 검사를 통해서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업무다. 범법행위가 발생하면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벌칙을 주거나 검찰에 고발하면 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직접 범법자를 잡으러 다닐 이유가 없다. 미국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사법경찰권이 있고 지역사무소에 FBI 배지를 가진 요원이 배치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이 안전규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초등학교에도 경찰이 배치된다. 그렇다고 경찰이 가르치지는 않는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사업자가 저지르는 범법이, 개인적 이득을 취하거나 시설에 위해를 가하는 형사범죄가 아니라 업무상의 과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신속한 현장대응이 요구되는 사안이 아니다. 현재의 특별사법경찰제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규제권을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전규제의 목적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기동경찰대나 신속기동대가 있다고 해서 원자력시설이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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