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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을 이용한 배의 돛대는 노예와 함께 주요한 동력원이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풍차를 이용해 곡물을 빻았다. 네덜란드는 풍차를 제방 뒤쪽의 습지나 호수에서 물을 빼내 농경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유럽의 풍차는 밀을 빻는 것부터 용광로의 풀무를 돌리는 등 다양한 산업적 용도로 활용됐다. 19세기에 증기기관이 발명되기까지 수 백년 간 유럽 산업에너지의 4분의 1은 바람에서 나왔다.
우리는 수시로 전등과 TV를 켜고 끈다. 전력망은 수시로 변하는 전력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급전가능(dispatchable)’한 발전원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를 켜는 순간 바로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태양이 얼마나 강렬하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부는지에 따라 발전량이 수시로 달라진다. 이런 변동성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 성장에 장애로 작용한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많은 국가의 전력망은 에디슨과 테슬라가 살았던 100여 년 전 전력망을 처음 도입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한다. 날씨, 시간대, 요일, 계절에 따라 전력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대규모 송전 또는 발전 시설의 예기치 않은 손실과 같은 우발적 상황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진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이런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는 발전소, 전력망, 수요 측 대응, 에너지 저장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0% 이상을 차지할 때 기후 조건에 따라 비용 최소화를 위해 유연성 자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이 최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에 따라 온대, 열대, 건조, 대륙성 기후와 같은 네 가지 기후로 구분해 살펴보자.
여름이 무더운 ‘온대 기후’에서는 여름에 냉방 수요로 인해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고, 겨울에 난방 수요로 인해 이 보다는 작은 피크가 발생한다. 겨울에는 평균적으로 풍속이 높아 풍력이 피크 수요 대응에 도움이 되고, 일사량과 강수량이 많은 여름은 태양광과 함께 수력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 기후’에서는 연중 전력 수요가 일정하다. 그러나 계절별로 풍속이 크게 달라지므로 건기에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 우기에는 발전량이 떨어져 수력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조 기후’에서는 계절별 전력 수요가 일정한 편이다. 태양광 발전량도 연중 균일하지만, 풍력 발전은 연초의 짧은 우기 동안에는 크게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성 기후’에서는 여름에 일사량이 최고조에 달하고, 겨울에 강한 바람이 분다. 태양광과 풍력이 상호보완적이므로 계절적 변동성에 대응하는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는 7년 만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엘니뇨로 인해 일반적으로 겨울에 아시아 대부분과 캐나다 서부의 날씨가 따뜻해지고, 중국 남부와 미국에 강수량이 늘어난다. 여름에는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특히 중미에 건조한 날씨를 일으킨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인 파나마 운하에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배가 산을 넘어야 해서, 갑문에 물을 채워 배를 높이 띄워 운하를 지나가게 한다. 가뭄으로 인해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가툰호(Gatun Lake)의 수위가 낮아졌다. 이에 최근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 수가 줄었다. 전체 LNG 거래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시아로 향하는 미국 LNG 선박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 발전소는 신속하게 켜고 끌 수 있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변동성에 대한 백업 발전으로 유용한 데, 엘리뇨의 영향 때문에 가스 가격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기후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농경사회의 농민은 갈라진 논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도했고, 따뜻한 햇볕으로 벼가 익기를 소망했다.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기후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그러나 우리는 천수답 앞에서 기우제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산초 판자가 ‘아무리 봐도 풍차가 틀림없다’며 말렸지만, 30개가 넘는 거대한 괴물을 향해 창을 겨누고 돌격한 돈키호테가 될 필요도 없다. 발달한 인공지능과 모델링 기법을 토대로 기후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